북한 최고 통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남·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은 최근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장면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개교일(6월1일) 당정군 핵심 간부들이 교실에 앉아 수업하는 것을 참관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김여정이 주도한 이른바 '대남 오물 풍선 투하사건'이다.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는 당 핵심간부를 양성하는 북한 내 최고 교육기관이다. 1946년 6월 개교했던 김일성고급당학교가 2020년 부정부패 온상으로 지목받아 폐쇄되었다가 이름을 바꿔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만 이곳을 네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북한이 공개한 중앙간부학교 개교 기념 사진에서 눈길을 끈 것은 김덕훈 총리, 조용원 조직비서,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상 등 당·정·군 최고 핵심 간부들이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칠판 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고 벽면에는 김정은 사진과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자!'는 문구도 보인다. 이 장면은 김정은이 현지지도 할 때 하나같이 수첩을 꺼내들고 지시사항을 받아 적기에 바쁜 북한 고위관료들의 행동과 오버랩될 수 있다.
유사한 장면은 이번만이 아니다.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옆에 무릎을 꿇고 대화하고(2015.12 제4차 포병대회), 5성급인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무릎을 꿇고 김주애와 귓속말하는 모습(2023.9.9, 정권수립 75주년 열병식)에서도 볼수 있었다. 극단적 유일지배체제 하에서의 '폭력적 위계'를 확인시켜 주는 장면들이다.
독재자의 신격화가 절정에 달하면서 통치자와 관료가 국가 운영을 위해 서로 기능적으로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라 봉건적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 토론과 소통을 매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김여정 당 부부장 주도로 이루어진 '오물 풍선 투하 사건'도 북한의 국격과 대남 정책 관계자들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내용과 방법면에서 21세기 문명시대에 살면서 공개적으로 오물을 상대국에 투척하기로 판단한 북한의 의사결정 체계와 인식 수준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혐오를 자극해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낮은 수준의 전술로서, 국가를 주체로 하는 행동으로 보기에는 민망할 만큼 저급하다.
동기면에서도 유치하다. 김여정은 5월 29일 담화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고 비아냥댔다. 우리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한 대응임을 밝힌 것이다. 전단살포 문제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나 논리적 대응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고 감정적 표현들로만 가득하다. 북한은 김여정 담화를 내부적으로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의 실체를 알리기가 부담스러웠겠지만 오물 풍선 투척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일 비록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오물풍선 투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북한의 '오물풍선 투하 사건'은 패착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법으로는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을 뿐더러 국제사회로부터도 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이후 나름대로 '정상국가화'를 추구하고 있다. 정상국가화는 국가 운영시스템을 바로잡고 국격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김호홍
동국대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대북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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