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생존율 15.9%" 췌장암, 악성도 높이는 암세포 유형 규명

입력
2024.06.03 19:25
삼성서울병원-UNIST 연구팀, 단일 세포 전사체 분석 기반 췌장암 분자적 특성 규명

‘고약한 암’의 대명사인 췌장암의 악성도를 높이는 암세포 유형과 종양 미세 환경 변화가 규명돼 치료 전략 마련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종균·박주경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이세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이 췌장암 환자 가운데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다.

중앙암등록본부 통계(2021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췌장암 환자는 8,872명으로 전체 암 중에서 8위이지만 사망 원인으로는 5위다. 2017~2021년 전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72.1%이지만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5.9%로 1993~1995년 통계에 비해 5.3% 높아졌지만 국내 10대 암 가운데 예후(치료 경과)가 가장 나쁘다.

췌장암은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게다가 전이도 빠른데 치료 내성까지 잘 생겨 생존율이 극히 낮은 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췌장암이 진화·전이 방식을 규명하고 면역 억제 미세 환경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혔다.

췌장암 세포가 빨리 자라고 전이가 잘 발생하는 이유와 함께 치료 과정에서 치료에 불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분자 수준에서 살폈다.

조사는 췌장암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환자 2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61세로 13명(62%)이 여성이다. 췌장암 3기가 6명(29%), 4기가 15명(71%)이었다. 4기 환자 15명 중 13명은 간으로 전이됐다. 2명은 간이 아닌 뼈나 림프절로 전이됐다. 전체 생존 기간(OS) 중앙값은 9.7개월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내시경 초음파 유도하 세침 조직 검사(EUS-FNB)로 이들 환자 조직을 얻어 21개의 원발성 췌장암 조직과 표본, 7개의 간 전이 표본을 대상으로 단일 세포 전사체 데이터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췌장암의 핵심 특징을 지목했다. 췌장암의 세부 유형에서 기본형과 기저형 모두 상피-중간엽 전이(EMT)가 활성화돼 암세포가 다른 부위로 이동하는 전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관련 유전자 역시 세부 유형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는 유전자 증폭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기본형에서는 ‘ETV1’이라는 유전자가 더 잘 관찰됐으며 기저형에서는 ‘KRAS’란 유전자가 더 자주 관찰됐다. 둘 모두 암세포의 빠른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저형의 경우 췌장암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악성도가 높다. 이러한 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22%만 돼도 예후(치료 경과)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을 낮추는 데 기저형이 암 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결정적이라는 점도 이번에 밝혀졌다.

분석 결과, 기본형 56%, 기저형 36%이었던 환자는 항암제 투여에도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고 5.3개월 때 사망했다. 반대로 기저형 없이 정상형과 기본형으로 조직이 구성됐던 환자는 치료 반응이 좋아 45.6개월이 지난 연구 종료 시점에도 생존했다.

연구팀이 발표한 췌장암의 또 다른 특징은 췌장암 진화 과정에서 종양 세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면역 억제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이다.

췌장의 인접 장기이면서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간에 전이되면 면역 억제 특성을 가진 염증 세포 집단이 다른 부위보다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이 시 면역세포들이 억제됨으로써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이로 인해 암 성장을 촉진하는 원리다. 이러한 억제 환경을 형성하는 것도 췌장암 세포에서 기저형 비율 증가에 비례한다는 것도 함께 드러났다.

박주경 교수는 “췌장암을 분자 수준에서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분자 암’에 실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