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에 인류가 직면한 큰 어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을 만나고는 한다. 2차 대전 이후를 보자면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 두 지도자가 협력하여 이룬 냉전의 성공적인 극복을 꼽을 수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이 초기에 가졌던 입장을 크게 바꾸고 나서야 이러한 협력이 가능하였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는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는 점을 내세워 소련 공산당 내에서 인상적인 승진을 거듭하였다. 이러던 그가 1985년 서기장에 오른 이후 개혁과 개방을 내세우게 된 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담당했던 농업 분야에서 경험했듯이, 중앙 통제를 통한 운영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소련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 데서 출발했다.
역시 인상적인 것이 레이건의 변모이다. 그는 반공을 신념으로 내세웠고, 대통령 당선 후 '힘에 의한 평화'라는 기치하에 미국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그러던 그도 소련 전투기에 의한 대한항공 여객기의 격추, 그리고 '에이블 아처'라고 명명한 나토 군사 훈련이 미소 간의 무력 분쟁으로 치달을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소련과의 긴장 완화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후 고르바초프와의 협력을 통하여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 냈다.
오랫동안 남북한 관계를 관찰해 온 미국 학자 밥 칼린은 2018년 6월 미북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점성술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지금보다 더 유리하게 자리한 적이 없었다."
하노이 회담 이후 이러한 기대는 성급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근본적 변화는 거부한 채, 제재의 해제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실패한 북한은 하노이 회담 직후부터 바로 핵과 미사일 개발의 노골적인 과시, 남한에 대한 선제적 핵 공격을 분명히 하는 핵 독트린 변경, 그리고 급기야는 남북한은 동족이 아니며 남한은 협력과 통일의 파트너가 아니라 무력에 의한 영토 완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입장을 선언하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전례 없이 강화된 북러 관계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물자, 군사 기술을 지원받고 있고, 미중 간의 긴장으로 북중러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객관적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능성은 부단히 모색하여야 한다. 그런 염원에서 남북한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학자들에게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진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얻게 되는 몇 가지 공통 분모가 있다. 첫째, 북한이 현재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물자를 지원받고는 있으나, 북한이 고집하는 경제 구조하에서는 의미 있는 선순환적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북러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특수'이고, 전쟁이 종식되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극단적 폐쇄 경제, 자율화의 역행에서 볼 수 있는 경제적 비효율성, 계속되는 대북 경제 제재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없고, 따라서 여기서 야기되는 사회적 불만, 남한과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의 확산도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1980년대 소련이 겪었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변화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국경 봉쇄와 처벌 강화가 답이 아니다. 북한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에 철저히 대비하되 북한 변화의 가능성을 부단히 모색하여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