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영(25)씨는 석 달 전 유튜브 코미디 채널 ‘피식대학’ 구독을 취소했다. 영리한 유머 코드를 좋아해 구독했는데, 갈수록 차별적 시선이 드러나고 조롱 등 저급한 개그가 반복되면서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그룹 빅뱅의 대성의 출연이었다. 이씨는 “성매매 알선으로 복역한 승리 등 빅뱅의 민감한 문제는 묻지도 않고 (같은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그룹인) 만만한 2NE1만 건드리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 이태규(24)씨도 최근 구독을 취소했다. 지역 비하로 논란을 일으킨 ‘메이드 인 경상도’의 경북 영양군 영상을 보고서다. 그는 "행인 중 초상권에 민감한 젊은이들만 모자이크 처리하고 어르신들 얼굴은 그대로 내보낸 것이나 젤리를 먹으며 '할머니 살을 뜯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개그의 선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웹 예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지켜온 ‘피식대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영양군 영상’ 게시 18일 만에 구독자가 20만 명 가까이 이탈해 318만 명이던 구독자가 28일 299만 명으로 떨어졌다. '300만' 유튜버 타이틀이 사라진 데다 유튜브 코미디 부문 1위였던 채널 순위도 31위로 추락했다. '권위에 대한 풍자와 극사실주의 개그'라는 참신함으로 코미디계의 새 역사를 쓰나 했던 ‘피식대학’이 어쩌다 공분의 대상이 됐을까.
‘피식대학’은 지상파 공채 개그맨 출신인 정재형, 김민수, 이용주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중년 남성들의 특징을 포착해 과장되게 재현한 상황극 ‘한사랑산악회’로 2021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가부장제와 권위를 풍자하며 웃음을 안겼다. 이들이 엉터리 영어로 진행하는 ‘피식쇼’는 축구선수 손흥민, 할리우드 배우 잭 블랙 등 국내외 유명 스타들이 출연할 만큼 위상도 높다. 이들은 지난해 웹 예능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지난 11일 공개된 ‘영양군 영상’으로 질주가 멈췄다. 이들은 영양군 내 지명이 “중국 같다”거나 “강이 똥물”이라며 지역을 비하했고 제과점에서 햄버거빵을 먹으며 “영양까지 와서 먹을 음식은 아니다. 젊은 애들이 햄버거 먹고 싶은데 못 먹으니까 이걸 먹는다”고 말했다. 낙후된 지역과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것에서 쾌락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우월적 웃음’이었다.
'피식대학'이 퇴행한 건 왜일까. 일찌감치 징후가 포착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은 ‘메이드 인 경상도’ 시리즈의 다른 지역에서도 낙후된 환경을 조롱했다. 빅뱅 대성의 '나락퀴즈쇼' 등에선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이라는 지적을 샀고, 그룹 아이브 장원영 영상의 섬네일(피식대학의 'P'를 성관계를 암시하는 'F'처럼 보이게 편집)은 성희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피식대학'은 경청과 성찰 대신 ‘마이웨이’를 택했고, 한동안 사과를 거부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소소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지상파가 아닌 웹 예능이니까 괜찮아’ ‘우리 구독자들은 이런 걸 좋아해’라는 식으로 합리화해왔기 때문에 이번 영양군 영상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라며 “결국 오만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3년 전에는 자신들이 낮은 위치에 있어서 강자를 풍자했지만 그사이 본인들의 위치가 (약자에서 강자로) 달라져서 비판의 대상이 달라진 게 아닌지 냉철하게 반성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약자를 짓밟는 우월적 웃음은 폐기된 지 오래다. KBS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공중파 개그프로그램이 모두 폐지됐던 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 막히자 약자와 소수자를 개그 소재로 삼은 무지와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피식대학’이 경각심 없이 이 '필패 개그'를 답습한 것은 팬덤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교수는 “유튜브에선 자기 커뮤니티, 팬덤 구독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비윤리적 콘텐츠나 혐오·차별까지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개그콘서트'는 조심이라도 했는데 ‘피식대학’은 이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팬덤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피식대학'이 뒤늦게 올린 사과문도 진정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양 비하 영상 비판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이들은 언론이 논란을 보도하고 구독 취소가 시작되자 일주일 만에 사과문을 냈다. 이들은 “숙고 끝에 사과문을 올리게 됐다”고 했지만, 침묵하는 동안 자신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즐거운 일상을 공유했다. 장원영의 섬네일 이미지는 사과도 없이 수정했다. 이 때문에 사과 이후에도 구독 취소가 멈추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중들은 사과의 태도를 보는데, 가장 싫어하는 게 뻗대며 안하무인으로 구는 것”이라며 “뭘 잘못했는지 다시 한번 확실히 사과하고 똑바로 정리정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