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을 앞둔 21대 국회가 주요 민생 법안 처리를 못 하고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채 상병 특별검사법과 연금개혁안 처리를 반대하는 여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개의를 거부하면서다. 극적인 타결이 없으면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등 여야 간 공감대를 형성한 민생 법안조차 폐기된다. 이대로라면 원 구성 협상에서 22대 국회 법사위원장 확보를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릴 수 있게 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법사위 일정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된 28일 오전까지 여야의 극적 타결 가능성은 남아 있으나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이 법사위는 물론 본회의까지 거부하고 있어서다.
이대로 21대 국회가 끝나면 법사위에 계류 중인 민생 법안 상당수가 폐기된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 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구하라법'이 대표적이다. 구하라법은 2019년 가수 구하라가 숨지자 2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았던 친모가 뒤늦게 유산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진된 개정안이다. 20대 국회에서도 임기 만료로 폐기됐으나 21대 국회에선 여야가 극적 합의를 이뤄, 지난 7일 법사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으면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부모 육아휴직을 최대 3년으로 연장하는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원전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한 고준위방폐물법,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도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하면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유력한 법안들이다.
민생 법안 폐기 가능성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의힘 책임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앞두고 민생 법안을 볼모 삼았다는 주장이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소병철 의원은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이번 21대 국회에서 통과가 불발된 민생 법안들은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며 "채 상병 특검법과 민생 법안을 결부시키려는 여당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법사위가 최종 불발될 경우,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당 소속 법사위원장의 발목잡기 탓에 민생 법안이 가로막혔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