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준다"더니 잠적... 경복궁 낙서 배후 '이팀장' 잡았다

입력
2024.05.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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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만 주고 텔레그램 연락 끊어
사주받은 10대 두명, 40m 길이 낙서

미성년자들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꼬드겨 서울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 테러'를 하도록 사주한 배후가 붙잡혔다. 사건 발생 5개월여 만이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날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남성 A(30)씨를 체포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미성년자인 임모(18)군과 김모(17)양에게 경복궁 담장 훼손을 교사한 혐의를 받는다. 온라인에서 '이 팀장'으로 활동하던 A씨는 임군에게 "불법사이트 홍보 문구 등을 낙서하면 300만 원을 주겠다"며 범행을 부탁했다.

A씨의 지시를 받은 임군과 김양은 같은달 16일 새벽 경복궁 영추문,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 서울경찰청 동문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영화공짜'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공유 사이트 주소를 새겼다. 낙서 길이는 약 30m에 달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임군과 김양을 같은 달 19일 경기 수원시 주거지 인근에서 검거했다.

낙서 테러의 후폭풍은 컸다. 이를 모방한 2차 범행이 뒤를 이었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날인 17일 20대 남성 B씨가 경복궁 담벼락에 4m 길이의 스프레이 낙서를 남겼다. B씨는 범행 하루 만에 경찰에 자수했는데, 범행동기를 묻는 경찰에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낙서를 지우기 위한 작업도 고됐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등은 추운 날씨에 전문가 수십 명을 투입, 두 차례에 걸쳐 보존 처리 작업에 매진해야 했다. 낙서를 지우기 위한 작업에 1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을 정도다. 정부는 고궁 담장에 CCTV 110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지자체 등으로 구성된 '담벼락 순찰대'를 발족하는 등 여러 예방책을 내놓았다.

경찰은 그 동안 사건 배후인 A씨의 행방을 쫓아왔다. A씨는 약속한 300만 원이 아닌 10만 원을 임군에게 입금한 뒤, 이들과 소통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잠적했다. 경찰은 디지털 수사기법 등을 활용해 A씨의 신분을 특정, 그를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구체적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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