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여의도...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

입력
2024.05.21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간의 정치 문법과 상식이 다 무너진 것 같다"는 말만 되뇌며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지난 민주당 총선 공천에서 그의 정치적 동지는 고배를 마셨다. 그야말로 '비명횡사'했다. 권력을 잃은 쪽은 '너무 잔인하다'고 울었지만, 권력을 잡은 쪽은 '너무 순진하다'고 타박했다. 세상은 달라졌고 주류는 교체됐다. 오죽하면 혁명이란 단어마저 등장했을까. '그래서 정치는 나아졌나? 앞으로 나아질 거 같으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악다구니만 앞서는 투쟁, 강성 팬덤에 휘둘리는 이른바 뉴노멀 정치에 아직은 동의하기도,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①그 입에 '협치'를 올리지 말라, 금기어가 된 협치 = 8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한 당선자는 컴백하자마자 문자폭탄에 시달렸다고 한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감히 '협치'라는 단어를 내뱉은 '죄'였다. "여야가 대화나 협상을 하지 않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항변은 고리타분함을 넘어 금기가 됐다. 지금은 '협틀막'이 뉴노멀이다. '협치 멸종'을 선언한 자리엔 '민치(民治)'가 들어섰다. 주권자의 뜻을 받드는 게 최우선이란 거다. 정치의 본령을 읊은,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민치를 위해서라도 협치는 불가피한 숙명이다. 범야권이 거대해졌어도 200석까진 못 채웠다. 백번 밀어붙이면, 백번 거부하는 대통령이 버티는 상황에서, 외나무다리 전투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은 무슨 죄인가.

②양념보다 세진 메인디쉬, 반보 뒤쫓는 대리정치 = 벤치마킹은 순항 중이다. 친명계가 가동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작은 강성 팬덤, 이른바 개딸(개혁의딸)들이다. 당원을 끌어 모아 친명당으로 재정비하고, 무난하게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는 것. 친명 이전에 친문이 먼저 성공한 대권플랜이다. 문빠가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맹목적 지지 '양념'에 그쳤다면, 개딸의 전투력은 배가됐다. 헌법기관의 목줄을 흔들고,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응징한다. 국회의장 이변 사태 이후 '그립'은 더 강해질지 모른다. 정치는 어느새 민심을 아우르는 '대의(代議)'가 아니라 오더만 따르는 '대리(代理)'가 됐다. "DJ는 정치가 국민보다 반보 앞서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가 국민을 반보 뒤에서 따라만 가면 된다. 그게 뉴노멀이다." 한 친명계 의원의 그럴싸한 해석에도 고개는 갸웃거려진다. 개딸은 과연 모든 민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나.

③헌 시대를 넘어 새 시대를 만드는 대국정치 = '시대정신'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남에게 손을 내밀면 내가 죽는,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 협치는 필요 없고, 투쟁만이 당위일 수밖에 없는 암담한 대한민국 현실이 정치에도 투영됐다"(또 다른 친명계 의원)는 거다. 그러나 헌 시대를 바꾸고 새 시대를 여는 것, 생존을 넘어 공존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 진짜 정치의 몫 아닐까. "대한민국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총선 유세)던 이재명 대표의 다짐 역시 그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 대표가 대립과 투쟁, 팬덤을 넘어 정치를 얼마나 대국적으로 하느냐에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이재명이 만들어갈 '뉴노멀'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란 얘기다.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