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유일한 고양잇과 포식자 '삵'이 위험하다

입력
2024.05.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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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도심동물들] <10> 서식지 파괴와 로드킬로 희생되는 삵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삵의 안정적인 서식지였어요.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요. 이곳에서 삵 '영준이'와 '주선이'를 떠나 보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을 찾은 우동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한때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이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공간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우 연구원은 2010년 이전부터 이곳에 사는 삵, 너구리 등에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이들의 행동권을 추적하는 연구를 해왔다.

서울에서는 드물게 자연 생태계가 보존된 이곳에서 삵이 사라진 건 2011년 10월 경인아라뱃길이 개통되면서다. 경기 김포시 전호산과 이곳을 넘나들던 삵은 경인아라뱃길 공사로 서식지가 단절되면서 그 수가 줄었다. 우 선임연구원은 "이후에도 조사해보니 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고 이곳을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전과 달리 안정적인 공간 확보는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삵이 살았던 공간과 우 연구원이 최근까지 삵의 흔적을 찾았던 지역을 2시간 가까이 돌아다니고 나서야 1개월 정도 지난 삵의 배설물을 찾을 수 있었다. 배설물에는 쥐와 새의 발톱이 섞여 있었다. 이는 삵이 이곳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정착해서 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서식지 줄면서 로드킬 늘고, 위기의 삵

서식지 단절은 삵의 행동반경과 연관이 있다. 삵을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오대현 참생태연구소 부설 생태융합연구소장에 따르면 자연에서 암컷의 행동권은 1~2㎢, 수컷은 4~16㎢로 번식기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우 선임연구원은 "강서습지생태공원의 경우 삵이 야생에서보다 제한된 서식지를 집약적으로 이용했지만 경인아라뱃길이 생기면서 이조차도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며 "이는 삵이 개발사업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삵이 우리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1960, 70년대 이전 개체 수 조절 역할을 했던 표범, 호랑이, 늑대 등이 절멸하면서 이제는 삵이 먹이사슬의 최종 포식자가 됐다. 오 소장은 "최종 포식자가 먹이가 되는 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게 되고, 이는 종의 쏠림 현상을 막으면서 생물 다양성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삵이 살아가는 현실은 척박하다. 이전에는 전국에 널리 분포했지만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줄었고, 결정적으로는 1960년대 쥐 잡기 운동 과정에서 농약에 중독된 쥐를 먹으면서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살던 삵 '영준이'와 '주선이'의 말로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호산과 공원을 넘나들던 영준이는 우 선임연구원이 발신기를 단 지 한 달 만에 찻길 사고를 당한 채 길 위에서 발견됐고, 주선이는 3개월 만에 한강 범람 이후 신호음이 끊겼다.

실제 최근 5년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되는 삵의 수는 2019년 9마리, 2021년 13마리, 지난해 17마리로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구조 원인을 살펴보면 차량과의 충돌이 16건으로 제일 많았고, 어미를 잃음, 인공구조물 침입 후 고립, 덫에 걸림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삵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찻길사고다. 국립생태원 '로드킬 다발구간 정밀조사'에 따르면 2022년 찻길 사고로 죽은 법정보호종 388마리 가운데 230마리(59.3%)가 삵이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국토 면적 대비 전국 도로 밀도 기준을 보면 삵의 행동반경인 2㎢ 내에 도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찻길사고가 삵의 장기적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요소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식지가 줄면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양계장이나 축산농가 근처에서 설치된 덫에 걸리거나 고립돼 구조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삵 위해서는 결국 산을 파괴하지 말아야

삵을 절실하게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삵이 사람과 가까이 자리 잡고 사는 점도 작용한다. 삵은 이미 사람과의 접촉에 익숙해져 있어 도시 인근 공원을 비롯해 양계장 등 주택가까지 내려와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원 태백시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생후 60일 미만의 어린 삵이 고양이로 오인돼 안락사되기도 했다.

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로드킬과 고립 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요구된다. 김 재활관리사는 "생태통로나 유도울타리를 활용해 로드킬 사고를 줄이고, 농가에서 삵의 접근을 막을 때도 신체 훼손과 사고로 이어지는 올무나 덫이 아니라 차단벽이나 안전한 포획틀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소장은 "산림성 포유류인 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을 살리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면 삵이 팜유 농장에 많이 발견되지만 결국 인근 산림에 보금자리를 두고 먹이를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면 행동권이 겹치게 되면서 개체군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