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보니 집에 여성 시체가...몽유병 비혼모의 범죄가 고발하는 것

입력
2024.05.18 11:00
15면
티빙(파라마운트플러스) 드라마 ‘벽 속의 여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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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루스 윌슨)는 몽유병 환자다. 어느 날 아침 소들이 우는 소리에 깨어나면 속옷을 입고 시골길 한복판에 누워 있는 식이다. 자는 사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자신이 누구보다 무서울 수밖에. 로나는 집 현관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잠들지만 ‘사고’를 피할 수 없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한 여인이 집 안에서 죽어 있다. 소스라치게 놀란 로나는 얼떨결에 벽을 부숴 시체를 넣고, 벽을 봉한다. 혹시 로나는 수면 중 범죄행각을 벌이는 연쇄살인마일까.

①미혼모라는 이름의 죄

로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은 이어진다. 숨진 여인 이페(피오나 벨)의 뒤를 쫓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형사 콜먼(대릴 매코맥)이 로나가 사는 소도시 킬키누어로 급파된다. 이페는 노신부 퍼시 살인사건과 관련돼 있다. 로나와 퍼시 신부는 악연이 있다. 로나가 10대 시절 임신했을 때 비혼모 시설에 끌고 간 이가 퍼시 신부다.

30년 전 아일랜드에서 미혼 여성의 임신은 커다란 죄악이었다. 비혼모들은 수녀원에 갇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자신들이 낳은 아기의 행방을 모르기도 했다. 부모는 비혼모 딸을 커다란 수치로 알았다. 세상이 변하고, 옛 과오에 대한 반성과 진상 조사가 이어지고 있으나 로나의 상처는 여전하다. 몽유병은 로나의 마음을 상징한다.

②미스터리로 고발하는 역사

로나는 옛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로나의 무의식이 빚어내는 일이 이야기를 전진시키나 드라마가 초점을 맞추는 건 인권 유린이다. 가톨릭 교리의 교조적인 적용, 공동체의 동조와 묵인을 로나와 주변 비슷한 처지 인물들을 통해 고발하려 한다.

범죄자로 여겨지던 로나는 가톨릭 일부 인사의 죄상을 파헤친다. 그는 어린 시절 임신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위치에서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주체로 변신한다. 로나를 주요 용의자로 보던 콜먼이 동참하면서 범죄 스릴러였던 드라마는 사회 고발극으로 급류를 탄다.

③아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숨진 이페는 로나가 갇혀 있던 수녀원의 수녀였다. 그는 자신이 가담했던 범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로나를 찾았다. 하지만 로나는 왜 이페를 살해한 것일까. 그가 살인범인 건 맞나. 강한 의문이 막바지까지 남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고발극에 긴장감을 안긴다. 로나와 콜먼이 사건을 파고들수록 아기들의 행방이 드러난다.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힌 것으로 알았던 아기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있다.

로나는 수면 중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잠을 안 자려 노력한다. 그는 집 벽에 ‘깨어 있으라(Stay Awake)’라는 문구를 써 놓는데,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과거의 잘못에 눈감고 현실의 아픔에 눈감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드라마는 경고한다.

뷰+포인트
최근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소재, 주제가 엇비슷한 드라마다. 죽은 걸로 알았던 아들을 뒤늦게 찾아 나서는 늙은 여인의 사연을 그린 영국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2013)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혼전 순결을 중시하고 낙태가 금지된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과거사를 소재로 했다고 하나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다뤄진다. 광적인 신념이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지난해 8월 첫 공개된 드라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75% 시청자 83%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