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자 전쟁 회의론’ 공개 표명… 이스라엘은 ‘라파 진격’ 준비 끝냈다

입력
2024.05.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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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군사 압박만으로는 하마스 격퇴 힘들다”
국무부 2인자 “완승 불가… 이, 9·11 후 미국과 비슷”
이, 라파 도로에 전차 진입… “바이든에 직접 도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수행에 대한 회의론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분출하고 있다. ‘군사적 압박’만으로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격퇴하지 못한다는, 애당초 ‘하마스 섬멸’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공개 표명한 것이다. 전쟁 방식과 최종 목표, 두 가지 모두 잘못됐다는 일침이었다.


"이, 끝없는 대테러전 우려" "정치적 해법 시도해야"

13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하마스를 완전히 격퇴하려면 군사적 압박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계획을 수반하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들은 계속 돌아온다”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대(對)테러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우려되는 가자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지상전 개시를 반대한다는 의사도 거듭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 2인자인 커트 캠벨 부장관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마이애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청소년 회담’ 연사로 나선 캠벨 부장관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압도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구상하고 있으나, 그것이 유력하거나 가능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9·11 테러(2001년) 이후 우리가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부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뒤에도 반군과 폭력이 종식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는 또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더 존중하는 정치적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고집불통' 이스라엘에 좌절? 미국의 알리바이?

이에 앞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스라엘에 직격탄을 쏟아냈다. 전날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한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에는) 신뢰할 만한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 계획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본 적이 없다”며 “가자 분쟁 종료 이후 계획도 우리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CNBC방송은 “가자 작전에 대한 블링컨의 가장 날 선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 수위가 높아진 것은 수개월간의 물밑 설득과 조언,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는 좌절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라파 진격 시 이스라엘에 무기 제공을 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후통첩(8일)을 뒷받침하는 측면도 있다. CNN은 “전쟁이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쟁 접근법에 점점 더 의문을 표하고 있다”고 짚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철통 같은’ 이스라엘 지지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대이스라엘 무기 공급에 대한 안팎의 비난을 희석시키려는 알리바이 성격도 짙다. 이날 설리번 보좌관은 “가자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고 믿지 않는다”거나, “라파에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는 않았다”며 이스라엘을 감싸는 언급도 내놨다. 퇴로를 마련해 둔 셈이다.

미군 장교, '이스라엘 지지'에 항의성 사임

그러나 미국이 언제까지 이스라엘을 편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군 내부의 동요 조짐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동 정보 분석가인 해리슨 만 미군 소령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을 야기하는 미국 정책에 반발하면서 사임했다”며 “군 장교 중에서는 첫 (항의성 사임) 사례”라고 전했다.

미국의 잇따른 ‘자제 압박’에도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라파 지상전’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미국 고위 관리 두 명을 인용해 “IDF가 며칠 내 전면 공격이 충분할 수준의 병력을 라파 외곽에 집결시켰다”고 보도했다. 전차도 진입해 주요 도로 차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관리들은 이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IDF는 가자 북부와 중부에서도 지상전을 재개했고, 난민촌 포격·공습으로 이날만 최소 28명이 숨졌다.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