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는 350년(토리당), 짧게는 190년 역사의 영국 보수당이 안은 가장 충격적인 패배 중 하나는 윈스턴 처칠이 전시내각 총리로 있던 1945년 7월 총선이다. 패전 위기에 몰린 영국을 구해내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지 두 달 만의 선거에서다. 처칠은 4국 정상이 세계대전 후 전후 처리 협상을 하던 포츠담 회담 도중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처칠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던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900쪽 분량의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에 총선 내용을 2쪽 분량밖에 담지 않았다.
□ 80% 지지를 넘었던 여론조사 등 보수당 압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총선 결과는 보수당 197석, 노동당 393석 차지로 나타났다. 민심이 전쟁 이후의 시대 변화와 새 인물을 원한 그 결과를 놓고 보수당은 어리둥절했고, 한동안 길을 잃었다. 지금 영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이달 초 열린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참패했다. 보수당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노동당(1140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13석을 얻었다. 11개 자리를 놓고 벌인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한 석만 건졌다.
□ 요즘 영국인들은 브레그렛(Bregret)에 시달린다고 한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악인 경제난으로 유럽연합 탈퇴(Brexit)를 후회한다(Regret)는 의미다. 브렉시트 이후 보수당의 정책난맥과 보리스 존슨의 거짓말 게이트, 리즈 트러스 최단명 내각의 실정, 일부 의원들의 부패 행각, 극우파의 과도한 목소리 등이 누적된 결과가 지방선거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보수당은 지지율에서 노동당에 10~20% 뒤져 내년 초 선거를 앞둔 리시 수낵 총리는 ‘좀비’라는 말을 들으며 조기 총선 요구에 직면해 있다.
□ 왠지 남 일 같지 않은 영국 정치풍경이다. 개헌선에 육박하는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대통령은 5년 내내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펴기 어렵게 된 난감한 처지다. 거듭되는 참패로 여당은 여전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보수 정체성 강화냐, 외연 확대냐의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어설픈 패인 분석과 한가한 방향성보다 보수의 악덕과 미덕이 무엇이었는지 우선 성찰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