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저널 그날'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1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장수프로그램이 출연자 교체 압박과 제작진 강제 해산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상황이다. '역사저널 그날' 측은 배우 한가인과 함께 3개월 간 재정비 시간을 가졌음에도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프로그램이 무기한 보류하게 됐다고 읍소했다.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KBS 본관에서는 KBS피디협회의 주최로 '역사저널 그날' 관련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김세원(KBS PD협회 회장)·김은곤(KBS PD협회 부회장)·조애진(언론노조KBS본부 수석부위원장)·기훈석(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이 참석했다.
지난 13일 제작진은 기존 섭외했던 출연자가 아닌 조수빈의 MC 발탁에 반발했고 이로 인해 프로그램이 폐지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프로그램 해체라고 말한 제작진은 '역사저널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김은곤 부회장은 "가장 객관적이어야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엄격하게 연출한다. 이번 사건처럼 녹화를 3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통보 받는 것은 유례 없는 사건"이라고 읍소했다. 3개월 간 재정비 시간을 가진 제작진은 4월 30일 녹화를 앞두고 지난 25일 제작본부장으로부터 조수빈 기용 통보를 받았다. 이에 제작진은 본부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녹화 잠정 연기 통보를 받았다.
제작진이 내부적인 판단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러 지금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된 배경이다. 김세원 회장은 "제작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제작진이 3개월의 준비를 거쳐 유명 배우를 섭외했다. 반복을 거듭한 끝에 사측에 제작 중단, 제작진 해산을 결정했다. KBS 역사와 함께 했던 '역사저널 그날'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번주까지 녹화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제작본부장, 사장, 모든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애진은 "매일 말도 안 되는 지시에 고통 받고 있다. 평PD들은 거부도 하면서 버티고 싸우고 있다. 저희의 매일이 기사화되지 않을 뿐,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불합리한 지시와 탄압을 막아야 하는 것이 통탄스럽다. 6년, 7년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국민의 방송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이냐. 제작 논리로 이야기해라. 그것이 공영 방송의 의의다. 출연자 위임 권한이 있다는 말을 할 것이면 유튜브로 가라"라고 분노를 드러냈다.
사측이 제작진에게 '항명'이라며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이날 제작진은 기자회견에 나오지 못했다. 기훈석은 "조수빈이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론이 프로그램 폐지다. 왜 특정 아나운서가 하지 않으면 폐지되는 것이냐. 계속 의문이 든다. 제작진, 국장, 고위 간부까지 사장에게 편지를 쓰고 임원들에게 읍소를 했는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냐. 누가 그 분을 밀어넣었냐"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역사저널 그날' 제작진은 경영진으로부터 조수빈 아나운서 MC 통보에 반발했다가 폐지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앞서 배우 한가인이 섭외됐고 녹화를 앞둔 상황이었으나 조수빈의 투입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조수빈의 정치적 성향과 이력을 들며 거세게 반대했으나 끝내 폐지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프로그램 팀장, 부장, CP, 시사국장이 공식적으로 조수빈의 투입을 반발하고 있는 상황을 들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가인의 섭외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출연 의사를 묻는 것이 송구스러운 상황이다. 기약 없이 2주간 녹화를 하지 못했다. 연예인, 교수들이 불가피하게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최대한 송구한 마음으로 제작진이 대응 중"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조수빈 소속사는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의 진행자 섭외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 또 해당 프로그램 진행자 선정과 관련해 KBS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밝히며 진실 공방을 예고했다. 이에 기훈석은 "소속사의 말이 정말이라면 제작진이 모르는 사람이 매니저와 연락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달렸기 때문에 그의 불참이 굉장히 중요했다"라고 반박했다.
기존 섭외된 출연자들이 있기 때문에 빠른 녹화 재개가 필요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급작스러운 폐지 통보로 피해 손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PD를 비롯해 100여 명의 스태프들이 직장을 잃게 됐다. 아울러 계약 취소, 기집행된 비용만 무려 억 단위에 이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또한 2억 원의 협찬이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현재 KBS PD협회는 협회, 노조를 활용해 내부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알린 후 해결 방안을 찾는 중이다.
KBS 소속 PD들은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긴급 편성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으나 사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을 배임 혐의라고 짚은 PD협회 측은 추후 법률 검토를 통해 검찰 고발까지 고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