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의 수능 점수를 묻지 않았다

입력
2024.05.1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단독] 수능 만점 명문 의대생이 여자친구 살해.'

지난 6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교제살인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KBS는 가해자의 수능 점수를 보도했다. 이후 모든 관심은 가해자 신상에 쏠렸다. 이별을 원했을 뿐인 20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참담한 사건은 가해자의 신분(의대생)과 학업 성취(수능 만점)로 뒤덮이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에서 발생한 50대 남성의 아내 살인 사건도 그랬다. 가해자가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이며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이 사건을 압도했다. 가해자의 직업과 배경이 주는 충격은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 손에 목숨을 잃는 현실을 은폐했다. 언론이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명석한 의대생이나 변호사는 흉악범죄와 거리가 멀 것이라는 편견과 상류층의 몰락을 엿보고 싶은 관음증만 건드린 탓이다.

이렇다 할 사회적 지위가 없을 땐 행적을 파헤친다. 조직적인 성착취 범죄 ‘n번방’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언론은 주범 조주빈의 대학 학점과 학보사 편집국장 이력, 봉사활동 내역을 앞다퉈 ‘단독’ 보도했다.

이런 보도로 얻는 공익은 뭔가. 악의 평범함을 상기시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도, ‘아이고 어쩌다’라며 부지불식간에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것도 공동체에 이로울 건 없다. 범행 동기 파악과 예방책 마련이라는 명분도 무색하기만 하다. 강남 교제살인 가해자의 과거 인터뷰와 온라인 게시글, 지인들의 증언을 알뜰히 모은 가십기사가 인과관계 규명과 구조적 변화로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가해자의 서사는 늘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가렸고, 재판정에서는 자주 감형 요소가 됐다. 법원은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해왔다”며 형을 낮췄고, 학벌과 직업은 성실함의 강력한 증거였다. 그래서 ‘수능 만점’ 보도에 어떤 이들은 “여자친구 죽인 남자한테 누가 수능 점수를 물어보느냐”라고 불쾌해했고, 어떤 이들은 “또 앞날이 창창하다고 감형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몇 년 전 악인을 대하는 태도로 주목받았던 지도자가 있다. 2019년 뉴질랜드에서 한 백인 극우주의자의 무차별 총격으로 51명이 사망했을 때 저신다 아던 당시 뉴질랜드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But he will, when I speak, be nameless)"이라며 가해자 명명조차 거부했다. 살인자 대신 희생자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취지였다. 2022년 범인이 항소했을 때도 아던은 “우리는 그에게 아무것도(악명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언론이 봐야 할 곳도 정확히 ‘수능 점수’ 반대편이다. 여성들이 집단 체험해 온 남성 폭력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역사, 일상이 붕괴된 피해자들의 서사다. 물어야 할 것도 많다. 경찰은 왜 아직도 스토킹과 교제·가정폭력을 ‘남녀 간의 일’로 치부하는지, 어째서 법원은 현장에서 잡힌 불법촬영 가해자조차 무죄 판결하는지. 여성들이 계속 사라지는데도 정부는 왜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여성 통계조차 만들지 않는지.

‘한국 여성의 전화’가 언론 보도 등을 분석한 것만으로도 지난해 최소 138명의 여성이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사흘에 한 명,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건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언론의 집요한 질문이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