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원화 약세에도 외국인 투자자가 주식을 20조 원 넘게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들의 투자 전략이 점차 ‘초단타’ 양상을 띠면서 소수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는 ‘가치 투자’는 옛말이 됐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들어 직전 거래일인 10일까지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서 총 20조5,447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월 3조4,828억 원, 2월 7조8,583억 원, 3월 4조4,285억 원, 4월 3조3,727억 원 등 내내 플러스(+)로, 이달 순매수 규모도 1조4,000억 원을 넘어섰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지연과 중동사태, 엔화 약세 등 영향으로 우상향 곡선(원화 가치 하락)을 그렸다. 원화 약세 때는 환차손 위험 등으로 외국인이 주식 매도에 나서는 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매수 자금 유입이 이어졌다.
반도체, 자동차 등 대표 수출주의 이익 개선세와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업종에 대한 밸류업 정책 수혜 기대감 등이 겹친 결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실제 올해 외국인 순매수 상위 10종목에는 삼성전자(8조3,069억 원)나 현대차(2조9,149억 원), SK하이닉스(1조2,629억 원) 외에 KB금융(7,013억 원), 삼성생명(3,977억 원) 등 금융주가 포함됐다. 향후 원화 강세가 진행될 경우 환차익을 기대하는 수급도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11년 이후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 1,300원 이상에서 순매수를 보여왔다”며 “한국 주식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다고 인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가치투자’ 공식이 깨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국증권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외국인 주도세력의 투자전략 변화’ 논문에서 우민철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부 팀장과 엄윤성 한성대 교수는 2005~2022년을 5개 구간으로 나눠 코스피·코스닥 시장 외국인 매매 내역을 분석했다. 그 결과 ①구간별 거래대금 상위 10위 외국인은 2005~2008년 120개 미만의 종목을 집중 투자하는 계좌에서 2020~2022년 1,000개 이상의 종목을 분산 투자하는 계좌로 바뀌었다. ②구간별 상위 10개 계좌가 거래한 종목의 평균 시가총액도 8조7,125억 원에서 2조2,231억 원으로 축소됐다.
이는 ‘가치투자자’ 외국인에서 ‘초단기 알고리즘 투자자’ 외국인으로 주도 세력이 변경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외국인은 대규모 자금을 소수 우량주에 투자해 중·장기로 운용하는 정보거래자로 인식됐지만, 최근 단기성 매매전략을 활용하는 외국인 거래규모가 가치투자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며 “금융당국도 외국인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시장 영향력에 대한 추가적 견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