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간부가 피해자 배 의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혐의는 ‘공무상 비밀 누설’. 경찰만 알 수 있는 사건 관련 정보를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다.
창작물을 대중과 공유하고 그로부터 돈을 버는 건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누구나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개인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의사, 경찰, 법조인 등 ‘특수직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 특히 인기다. 그러나 새로운 영역의 등장에는 그늘도 따르는 법. 지식과 정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올 1월 터진 배 의원 피습사건은 현역 국회의원을 겨냥한 정치테러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으나, 결국 미성년자의 우발적 범행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사건 여파가 잦아들던 지난달 28일 배 의원 측은 돌연 당시 수사팀을 이끈 강남경찰서 소속 A총경을 고발했다. 사건 발생 며칠 뒤 수사팀 구성이나 경찰의 1차 판단 등 내밀한 수사정보를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인 플랫폼에 여러 번 게시한 혐의다.
배 의원 측 법률대리인 김봉우 변호사는 “(A총경은) 피습을 다룬 글의 제목과 서두에 ‘비하인드 더 씬’ ‘과연 우발적인가’ 등 자극적 표현을 썼고, 본문에서도 ‘수사 내용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고자 한다’며 피해자 실명을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화제성을 노리고 공무상 비밀을 유출했다는 주장이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에서 수사하고 있다.
법조계도 고민이 깊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판 일화를 연재하는 현직 변호사가 부쩍 늘어난 탓이다. 한 이혼전문 변호사는 인스타그램에 그간 맡았던 ‘막장 부부’의 사례를 각색한 만화로 30만 명대 팔로어를 모으는 등 인기몰이를 했는데, ‘유명 인플루언서 아내’ 등 묘사가 자세해 신원을 추정하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SNS를 이용한 홍보가 점점 보편화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각색을 거쳤더라도 실제 담당한 재판을 창작물로 만드는 건 변호인의 ‘증인보호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고독사, 살인 등 죽음의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부’ 역시 사생활 유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은 보통 업체명을 내건 블로그에 작업 현장 사진을 공개하는 식으로 홍보하는데, 망자의 나이와 거주지, 물품 사진 등 개인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될 때가 적지 않다. 한 업체는 ‘청년 고독사 현장’이라며 망자가 연인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그대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본문에 ‘저혈당 쇼크로 사망’ ‘○○대학원 졸업’ 등 병력과 이력을 적기도 했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수 그룹이라도 특정인의 신원이 드러나는 경우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콘텐츠가 전문 영역과 지식을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가령 강력계 형사 출신의 유튜버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신종 피싱 범죄’ 예방법을 소개하거나, 흉악범죄의 낮은 양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하는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만 창작물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수익을 얻고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보다 자극적 소재에 매달리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특수 영역이라 해도 보여주지 말아야 할 부분은 분명 있다”면서 “디테일을 더해 콘텐츠의 차별성을 꾀하려다 직업윤리를 위반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