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충분히 벌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사적 제재’ 콘텐츠를 방송하던 유튜버가 범죄관계자 등으로부터 수억 원의 뒷돈을 뜯어낸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약에 취해 길 가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A씨와 알고 지낸 유튜버가 친분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공개한 뒤, A씨 지인과 접촉해 별도 범죄의혹을 방송하지 않는 조건으로 3억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공적인 분노를 상업적 사익 추구에 활용한 '죄질이 나쁜' 사례다.
□ 사회적 공분이 터졌는데도 법적 응징이 미흡하다고 느껴지면 사적 제재가 분출할 가능성은 커진다. 2020년 연말엔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해 12년을 복역한 조두순(당시 68세)의 출소를 앞두고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떠들썩했다. 한 격투기 선수는 SNS에 집 주소 제보를 요청하고 “출소하면 조두순이 남자 구실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중미 과테말라의 지방 도시에선 20대 전과자 두 명이 상점에서 한 여성을 총으로 쏜 뒤 도주하다 행인들에게 붙잡혔고, 순식간에 불어난 주민 200여 명에 의해 화형을 당한 끔찍한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 학교폭력에 시달린 주인공이 성인이 돼 가해자를 응징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가 지난해 흥행을 누린 것도 세태를 반영한다. 비장한 뜻과 함께 역사 정의를 세우기 위한 사적 제재도 있다. 1996년 택시기사 박기서씨가 직접 만든 둔기 ‘정의봉’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살해한 경우다. 더 알려진 사람은 평생 안두희를 쫓았던 추적자 권중희씨다.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정부 답신에 생업을 버린 채 안두희를 찾아내 응징하고 납치까지 해 자신이 '하수인'이란 진술을 받아냈다.
□ 만화가 강풀은 2006년 웹툰 ‘26년’을 연재했다. 5·18 유가족과 당시 계엄군 등 7명이 모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으로 향하는 내용이다. 공권력이 부패해 ‘악인’을 처벌하긴커녕 그쪽 편이란 느낌을 주면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법적 처벌과 국민 법감정의 괴리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법에 대한 신뢰가 바로 서지 못하는 한 사적 응징을 뿌리 뽑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