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요건은 마련됐다. 최대 과제는 그간 유족과 여론 모두 비판해온 참사의 ‘윗선 책임’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다. 다만 세월호 전례에 비춰 정쟁과 진영 싸움에 휘말려 사회적 참사 조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태원 특별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설치다. 특조위는 형사책임(수사)을 따지는 것뿐만 아니라 참사 책임 소재를 행정 측면까지 넓혀 종합적으로 진상을 살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윗선, 즉 고위공직자의 잘못된 판단이 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다.
참사 발생 1년 반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기소된 고위공직자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유일하다. 그는 핼러윈 축제 이전에 내부 보고 등을 통해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위험을 예측하고도 기동대 배치 등 적정한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아 사상자 규모를 키운(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올해 1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이조차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송치 1년이 넘도록 기소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대검찰청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까지 열었다. 김 전 청장 역시 지난달 22일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재판 역시 더디게 진행될 전망이다. 현장 책임자 격인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보석으로 풀려난 후 줄곧 무죄를 피력하고 있다.
특조위는 사법절차를 밟고 있는 공직자들의 혐의 입증은 물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판단을 받은 최고 윗선의 법적·도의적 책임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참사 유족들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윤복남 변호사는 “기소가 특조위의 목적은 아니다”라면서도 “참사 당시 왜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는지, 이런 조치가 동시간대 시위나 마약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등 진상규명이 미진한 행정적 책임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여된 권한 못지않게 특조위의 한계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를 조사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비상임위원으로 일했던 황필규 변호사는 “세월호 진상 규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조사위가 늦게 꾸려진 점”이라며 “가해자들이 증거를 은폐하거나 실무진 기억이 왜곡됐었는데, 이태원 참사도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빠른 구성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최장 1년 3개월인 특조위 활동 기한도 조사위원 선발과 자료 요청, 보고서 집필 등 전 과정을 해내기엔 짧다는 지적이 많다. 황 변호사는 “단기 운용되는 조직은 인적 독립성과 전문성,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아 상설 조사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야 동수(4명)로 나뉜 위원 분배도 험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민변 이태원 참사 TF 법률대응팀장을 맡은 양성우 변호사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사 방향, 결론 채택 등을 놓고 위원들이 갈등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이정일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는 초기 대응 부실, 병원 이송 허점 등 다양한 문제가 얽힌 사건”이라며 “정쟁을 떠나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조사위원을 추천해 종합적으로 사안을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