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공시, 기업 자율에 100% 맡긴다... "테슬라처럼 비전 제시"

입력
2024.05.02 17:46
공시 통해 중장기 목표 제시토록
인센티브·패널티 없이 '자율참여' 강조
"기업 불확실성 커질 듯" 우려도

금융당국이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한 공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기존 공시가 이미 발생했거나 결정된 내용을 정해진 서식에 채워넣는 방식이었다면, 밸류업 공시는 기업의 중장기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 등을 자율적으로 담게 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연구원 등과 함께 2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이 제시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밸류업 노력이 더해진다면 우리 주식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우상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장기업이 이를 통해 주주 등과 활발히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의 구조는 △기업개요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평가 △소통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지표를 선정하고 이를 공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재무지표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이익비율(PER)을 선택해도 되지만, 당장의 실적보다 성장이 중요한 기업은 시가총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지표인 주가매출비율(PSR)을 선택하는 식이다. 주주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 재무지표뿐 아니라 지배구조·사회적 책임과 같은 비재무지표도 활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기업이 주가를 띄우기 위한 단기적 사업전략이 아닌 3~5년짜리 중장기 목표와 이행 계획 등을 공시하길 권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테슬라가 2004년에 설립돼 2010년 나스닥에 상장됐는데, 2020년까지 단 한 번도 이익을 낸 적이 없다"며 "그럼에도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기업 비전을 제시하고, 투자자들은 이를 믿고 투자하면서 기업가치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효과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법인세, 배당세 등 혜택을 제시하지만, 법 개정 사안인 데다 다수당인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진전하고 있는 건 의미가 있지만, 시장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세제 혜택이 얼마나 현실성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밸류업 지수가 만들어지고 기업들이 이 지수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면 긍정적 영향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시 불참 기업에 패널티가 없다는 지적에 금융위 관계자는 "공시를 의무화하면 '공시를 위한 공시'가 될 것"이라며 "밸류업 공시좋은 효과를 본 선례를 통해 시장 자율적으로 확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에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가이드라인에서 수많은 내용을 '할 수 있다'고 제시했지만 기업 입장에선 다른 회사들과 비교가 되는 만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행동주의펀드들이 공격을 가하는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최종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준비가 되는 기업부터 차례로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정부에서 상당히 꼼꼼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은 만큼,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들은 조만간 이에 맞춰 공시할 것"이라면서도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내용이나 연기금의 역할 등 큰 그림 차원에서의 구체성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안하늘 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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