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도로 밖은 위험해!' 스쿨존 강화가 어린이 보행권의 답인가

입력
2024.04.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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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도로, 이곳은 반듯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길 건너편과 다르게 오래된 연립주택과 공업소 등이 혼재돼 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이곳 이면도로에선 크고 작은 어린이 보행자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도로를 걷던 8세 여아가 보행자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2년 후 이곳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교차로 부근에서 7세 남아 역시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두 어린이가 사고를 당한 장소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였으나 각각 보호구역과 비보호구역이 교차하는 지점과 보호구역이 해제되는 경계 지점이었다. 2015년에는 보호구역이 끝나는 지점에서 불과 50m 떨어진 지점에서 9세 남아가 중상을 입었다.

세 어린이가 중상을 입은 보호구역에서 남쪽으로 2㎞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둘러싼 보호구역에서도 2019년 한 해에만 4명의 어린이가 중경상을 입었다. 마찬가지로 전부 구역이 해제되는 경계 지점이거나 비보호 구역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2년 후에도 이 어린이보호구역이 해제되는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7세 남아가 화물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경계·교차 지점에서 3년간 5건의 사고가 발생하는 동안 해당 보호구역의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 사고는 0건이었다.

이달 11일 송파구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4세 남아가 좌회전하던 차량에 치여 사망하자 정부는 전국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보호구역의 실태를 점검하고 289억 원을 우선 투입해 미비한 안전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어린이 보행자 교통사고에 대한 해법은 늘 ‘스쿨존’ 시설 보강과 처벌 수위 강화로 결론 난다. 그러나 2022년 기준 전체 보행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중 86.36%는 스쿨존 밖에서 사고를 당했다. 스쿨존이 해제되는 지점과 비보호 도로와의 교차 지점에서 발생한 사고를 따로 계산하면 완전한 스쿨존 내에서 발생한 사상자 비율은 더 줄어든다.





가장 강력한 규제가 적용되는 최소한의 보호구역인 스쿨존이 ‘해제’되더라도 안전운전을 계속해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보호구역을 벗어나며 운행 속도를 급격히 올리거나 경계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성이 있다. 보호구역 지정 중심의 해법은 구역 내부에서만 조심하면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정작 구역이 끝나가는 지점 등을 사고 취약 지점으로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쿨존 지정 절차를 살펴보면 스쿨존 중심의 안전 대책은 거주 양상에 따른 보호 한계 역시 명백하다. 스쿨존은 대상시설(학교·유치원 등)의 주 출입구를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의 도로 중 관련기관 협의를 통해 ‘최소한’으로 지정한다. 핵심은 전체 시설 이용자의 10% 이상이 해당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걸어서 이용하는 도로만 지정된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촘촘한 도로망 탓에 금방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버리는 단독·연립주택가는 도로망이 단순한 아파트 위주 주택가에 비해 지정도 어렵고, 지정하더라도 각 도로당 아동 수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열악한 보행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제정한 제도가 정작 가장 필요한 지역에는 적용하기 어렵게 돼 있는 것이다.

보행 취약 지역이 아니더라도 모든 도로를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 않는 이상 어린이 보행자는 언젠가 스쿨존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스쿨존 내부에만 아이들을 가둬둘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스쿨존 노면에 칠해진 붉은 페인트를 기준으로 위험한 세상과 안전한 세상이 나뉘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걷기 안전한 도시가 모두에게 안전한 도시다. 스쿨존에만 집중하는 보행안전 정책에서 벗어나 보편적으로 보행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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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