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 행안부 장관 '지휘권 확대' 착수... 경찰 장악 논란 재점화

입력
2024.04.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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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 '경찰행정 발전' 연구용역 공모
경찰개혁 권고 미뤄지자, 정부안 준비
경찰국 반대 경찰위 역할도 축소 예상
"시행되면 경찰 중립성 더 훼손" 우려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권을 확대하고 지휘체계를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감찰·징계 권한을 법령에 명문화하는 등 행안부 장관의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미 경찰국 출범 때부터 장관이 고위직 인사제청권을 행사해 '경찰 길들이기'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권한을 더 확대할 경우 통제·장악 논란은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국 "행안부 장관 경찰 감독 강화해야"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국은 18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경찰행정의 발전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프랑스, 영국 등 해외 경찰과 국내 경찰의 지휘체계를 비교 분석해 행안부와 경찰의 바람직한 지휘관계를 정립하고 정부조직법, 경찰법 등 관련 법령 개정에 필요한 학술자료와 쟁점, 찬반 논거 등을 수집하는 차원이다.

경찰국은 용역 제안요청서에 "국무총리 직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경발위)에서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체계 및 국가경찰위원회 발전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며, 후속 조치인 정부안 마련을 위해 학술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원래 '경찰개혁'을 목표로 2022년 7월 경찰국 신설과 함께 만들어진 경발위는 이듬해 3월 권고안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찰대 폐지 등 쟁점을 놓고 내부 의견이 엇갈리면서 운영 기한을 두 차례 연장하고도 아직 활동을 끝내지 못했다. 권고안이 계속 미뤄지자 경찰국이 먼저 정부안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연구의 초점은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권을 확대하는 데 맞춰져 있다. 경찰국은 "경찰은 민주적 관리와 운영, 적절한 지휘와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행안부 장관은 경찰 고위직 인사제청권만을 행사할 뿐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고안 내용이나 발표 시점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박인환 경발위 위원장의 발언을 감안하면, 경찰국이 선제적으로 행안부 장관의 권한 확대를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하반기 경찰 지휘체계 개편 강행

그러나 경찰국의 방침은 출범 때부터 제기된 경찰의 독립성·중립성 훼손 논란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당시 행안부는 장관의 총경 이상 경찰 고위직 인사제청권뿐 아니라 감찰·징계권까지 법령에 명시하려 했으나 전국경찰서장회의 등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한발 물러섰다. 경찰국이 손보려는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상 권한이 인사 보조, 경찰 지원 업무에 한정돼 있는 만큼 법령을 바꿔 장악력 확대를 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아울러 행안부는 국가경찰위원회(경찰위)의 역할도 축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용역 연구 대상에 '자문위원회로서 경찰위 위원의 전문성 및 중립성 확보' 방안이 포함된 점이 근거다.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1991년 경찰법에 의해 설립된 경찰위는 주요 치안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능을 한다. 경찰위는 경찰국 신설 당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올해 하반기쯤 정부가 실질적 지휘체계 개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7월부터 경찰청장 등 지휘부와 경찰위원장 등이 순차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윤희근 청장의 임기는 7월 종료되는데, 차기 청장 후보군인 조지호 서울청장은 경찰청 차장으로 재직할 때 경발위 당연직 위원으로 1년 이상 활동했다. 경찰국에 반대한 김호철 경찰위원장의 임기도 8월 끝난다. 경찰위 위원 임명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어 수월하게 지휘체계 개편을 밀어붙일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연구용역 보고서 발간 시점도 이 즈음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찰국 측은 지휘체계 개편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경찰국 관계자는 "경찰국 출범 후 해외경찰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전문성을 갖춘 연구 자료 및 문헌을 파악하려는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