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4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고유가)’ 파고에 휩싸였다. 물가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거진 국제유가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정부의 2% 물가안정 목표 달성엔 경고등이 켜졌다. 고물가가 장기화할 경우 금리인하 시기 역시 미뤄질 수밖에 없어 소비 부진‧기업 투자 위축에 따른 내수 침체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확대로 성장 시동을 걸던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건 대외 변수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등 중동발(發) 지정학적 위기로 오일 쇼크 공포가 다시 불거지고 있어서다. 이스라엘‧이란의 무력 충돌로 배럴당 90달러를 넘겼던 두바이유는 이후 소폭 하락(19일 87.72달러)했으나, 여전히 새해 첫 거래일(2일‧78.10달러)보다 12% 안팎 뛴 상태다.
일각에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잿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중동 산유국의 수출 통로다. 중동은 전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세 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다.
치솟은 에너지 가격은 수입 물가를 높이고,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월 연속 3.1%를 기록한 가운데, 국제유가까지 추가 상승하면 정부의 물가안정 목표(2%) 달성에도 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전국 평균 휘발유가격만 해도 리터(L)당 1,700원(21일 1,706.36원)을 돌파한 상태다.
중동 지역 전운이 고조되면서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극대화한 것도 물가불안을 키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원화로 환산한 수입제품 가격도 상승해 물가 부담이 커진다. 앞서 16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을 넘겼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넘긴 건 약 1년 5개월 만이다.
고유가‧고환율에 따른 고물가와 함께 한국 경제를 옥죄는 건 고금리 장기화다. 원유 등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당초 하반기로 예상했던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공산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3.5%)가 2월 상승률(3.2%)은 물론, 시장 전망치(3.4%)를 모두 웃돈 것도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지연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후퇴하면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역시 늦어질 수 있다. ‘고금리 고통’을 더욱 오래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10회 연속 동결(3.5%)했다.
장기화하는 고금리‧고물가는 위축된 소비 여력과 기업 투자를 더욱 쪼그라들게 한다. 정부가 내다본 올해 성장률 전망(2.2%) 달성에도 악재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 V자형의 빠른 회복보다 U자형의 저속 회복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예상치 못한 대외 충격으로 경기 전환 동력이 약화하면서 L자형 장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