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도, 소비자도, 지구도 살린다"... 한우 사육 단축에 거는 미래

입력
2024.04.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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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기간 30개월→24개월
단기 사육법 R&D 연말 완료
5개 사육방법, 농가 보급 계획
사육비 절감, 한우 가격 인하

“암소의 털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그게 사육기간을 줄이면서도 맛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비결이죠.”

전남 고창 소재 중우농장의 한우 출하월령은 24개월이다. 국내 평균(30개월)보다 6개월 이르다. 그렇지만 최상위 등급(1++) 소고기 생산 비율은 49%로 전국 평균(35%)을 크게 웃돈다. 마리당 사육비를 약 150만 원 낮추면서도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김문석 대표가 말을 이었다.

“암소 털에 담긴 유전정보를 분석하면 송아지의 근내지방도나 등지방두께 등이 어떻게 될지 추정할 수 있어요. 결과가 하위 20%인 암소는 번식시키지 않는 식으로 계속 고기 질 관리에 나선 거죠.” 일명 마블링으로 불리는 근내지방은 고기의 근육과 근육 사이에 침착된 지방을 말한다. 마블링이 고르고 넓게 분포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밀집사육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사육기간을 줄인 농가도 있다. 전남 강진의 장수팜은 출하월령(27개월) 단축 비결로 사육밀도 완화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초지를 꼽았다. 이곳 축사의 사육밀도는 마리당 15㎡로, 법정 기준(10㎡)보다 넓다. 축사 앞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초지도 마련돼 있다. 황정민 대표는 “소가 활동을 많이 하도록 해 자연스레 사료 섭취량을 늘린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육기간이 줄어든 만큼 생산비도 절감(마리당 240만 원)했다. 전국 평균 한우 사육비용은 마리당 600만 원 안팎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일선 농가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한우 사육기간 단축에 나선다. 올해 말까지 단기 사육방법을 개발한 뒤 현장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물가 안정과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서다.

농식품부는 2022년부터 강원대‧전남대‧농협과 함께 송아지 600마리를 대상으로 단기 사육방법을 연구개발(R&D) 중이다. 유전형질 분석으로 높은 등급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개체는 26‧28개월, 가능성이 높지 않은 송아지는 24‧26‧28개월 사육하면서도 육질을 높이는 방법 마련에 나선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를 토대로 5개의 한우 단기 사육방법을 개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수입육과 경쟁할 수 있는 한우시장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가 사육방법 개선에 나선 건 현재의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우 사육기간은 농업 선진국인 미국‧호주(18개월 안팎)보다 12개월 이상 길다. 근내지방이 고르게 배어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육기간이 길다 보니 잦은 이상기상으로 곡물가격이 뛸 때마다 한우 농가는 큰 손실을 봐야 했다. 지난해 곡물배합사료의 평균 가격은 ㎏당 578원으로 평년(422원)보다 약 37% 뛰었다.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향후 이상기상 발생 빈도수가 더 잦아질 수 있는 만큼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사료비는 전체 사육비용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저탄소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사육방식 개선에 힘을 싣는 부분이다. 소의 연간 온실가스 평균 배출량(1,595㎏)은 자동차(1,717㎏)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박병기 강원대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사육기간을 30개월에서 24개월로 단축할 경우 사료비용 32%, 온실가스 배출량은 25% 안팎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사육기간 단축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농가는 생산비를 낮추고, 소비자는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육류시장에서 한우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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