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2 양성 유방암 피하주사제, 환자 경력 단절 줄이는 해결책 되나?

입력
2024.03.30 09:57
[건강이 최고] 페스코 경우 치료 시간 90%까지 단축

유방암은 국내 여성 1위 암이다. 유방암 환자는 지난 5년간 30.5%가 증가했다(2017년 20만6,308명, 2021년 26만9,313명·국민건강보험공단).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0% 이상으로 높다. 하지만 전이·재발하면 평균 생존 기간이 1년 7개월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다. 특히 유방암은 10년 뒤에도 재발·전이 위험이 높은 ‘꼬리가 긴 암’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유방암 치료에 환자 편의성을 높이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젊은 유방암 환자, 경력 단절·가계 운영에 부담

유방암은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비율이 높아 환자 대부분은 항암 치료 시작 후 경력이 단절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치료 전, 직장을 다닌 환자 86.8% 중 치료 후 직장을 그만 둔 경우가 90%에 달했다. 특히 유방암 진단 직후 최초 6개월 내 ‘퇴사’를 택한 2030대 환자 비율은 51%로, 6개월 이상의 긴 치료 기간(67.9%), 치료 후 일시적 체력 및 면역력 저하(64.2%), 치료 기간 잦은 통원으로 인한 근태 관리 문제(34%)를 이유로 꼽았다.

유방암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가계 소득 하락에도 영향을 미쳐 상당한 부담을 겪는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직장 복귀율이 58%에 그쳐 다른 나라(영국 82%, 미국 80%, 프랑스 89%)보다 크게 낮다.

이처럼 유방암 환자의 사회경제적 활동 감소에 따른 생산성 손실로 한국이 매년 감당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6억1,000만 달러(8,195억3,500만 원)로 추산된다.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아 직장생활이나 육아를 병행할 때가 많아 유방암 생존자의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치료 시간 90% 줄인 피하주사제 나와

이러한 가운데 환자 치료 편의성을 높이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피하주사제 형태의 항암제가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인 피하주사 항암제는 2021년 9월 HER2 양성 전이성 및 조기 유방암 피하주사제로 허가를 받은 로슈의 ‘페스코(성분명 퍼투주맙/트라스투주맙)’ 다. 기존 정맥주사 치료제(허셉틴, 퍼제타)를 하나의 피하주사 형태로 업그레이드 해 2021년 항암제 최초로 개량생물의약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임상 연구에 따르면 기존 정맥주사제와 비교했을 때 비열등성을 확인해 비슷한 치료 효과와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다. 또한 환자 편의성을 높였다. 기존 정맥주사는 투여 시간(90분)과 관찰 시간(180분)을 합쳐 모두 270분 정도 걸렸지만, 피하주사제(페스코)는 투여 시간 5분, 관찰 시간 15분으로 20분만에 모든 치료를 마칠 수 있다. 90%까지 치료 시간을 줄인 것이다.

피하주사 제형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 시스템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임상 연구에 의하면 HCP 등 주요 의료 인력은 HER2 유방암 피하주사 치료제(페스코) 사용 시 치료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87.5% 절약했다.

의료기관의 항암화학요법 부서는 다른 치료를 위한 시간이나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정맥 주입에 따른 조제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또한 치료 일정 등 환자 케어를 위한 관리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피하주사제 쓰면 비용 크게 절감

피하주사제는 분산형 의료 시스템(Decentralised Healthcare) 구축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분산형 의료 시스템은 환자 편의성과 삶의 질을 높이면서 병원 부담과 의료진 시간을 줄여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 등은 HER2 양성 유방암 피하주사제(페스코)의 자택 투여 및 집에서 가까운 기관에서 투여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점심 시간을 이용해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다. 우리나라 환자가 3주에 한 번씩 대형 병원을 찾아 1박 2일을 보내야 하는 것과 대조된다.

피하주사제는 환자 시간과 삶의 질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최근 홍콩에서 허셉틴의 피하주사 비용 절감 효과 연구에 따르면, 모든 HER2 양성 유방암 환자가 정맥주사 대신 피하주사로 치료했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800만 달러(106억7,200만 원)를 절감했다.

또한 아일랜드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 17주기의 전체 치료 과정 피하주사제로 진행하면 1,609.99유로(234만 원)이 직접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HER2 양성 유방암 피하주사제가 국내에서도 허가된 만큼 실질적인 혜택 제공을 위해 환자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

HER2 양성 유방암 피하주사제는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보고를 거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공급 및 품질 관리 의무 등에 대한 협상 절차를 남겨 두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