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선 히잡 안 돼” 말했다가 살해 위협... 프랑스서 ‘이슬람포비아’ 확산

입력
2024.03.28 18:30
파리 고교 교장, 학생과 말다툼 후 협박 받아
'안전상 이유'로 사임... 정치권 "용납 못 해"
이슬람 위협 '심각' 수준... 일각선 혐오 조장

프랑스 사회가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증)'에 물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 여학생들에게 ‘히잡을 벗으라’고 요구했다가 살해 협박을 받은 한 고교 교장의 사임 소식에 분노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과격 세력의 위협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서는 무슬림 전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 발언까지 나온다.

27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프랑스 수도 파리에 있는 모리스라벨 고교의 교장은 최근 동료 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 자신과 학교의 안전을 위해 45년간 몸담았던 교육계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조기 퇴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선택은 지난달 28일 발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히잡을 착용 중이던 여학생 3명에게 ‘학교 안에선 벗어야 한다’고 말하자, 두 명은 순순히 따랐으나 한 명은 거부했다. 교장과 학생 간 말다툼이 벌어졌고, 교장은 이후 며칠 동안 온라인에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8세 이상 성인으로 직업 훈련차 학교에 다니던 이 학생은 교장을 학대 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은 ‘팔을 세게 맞았다’는 학생 주장을 거짓으로 판단했고, 오히려 교장에게 사이버 협박을 가한 26세 남성 등 2명을 체포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교육기관에 대한 이슬람의 잠입 시도에 직면한 교사들과 항상 함께할 것”이라며 해당 학생을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프랑스는 2004년 공립학교 내 히잡 착용을, 2010년 공공장소 내 베일(여성의 얼굴 전체를 덮는 무슬림 복장) 착용을 각각 금지했다.

교장의 사임으로 논란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좌우 가릴 것 없이 개탄을 쏟아냈다. 보리스 발로 사회당 하원의원은 “우리 공동체의 실패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중도우파 공화당의 브루노 레타이요 대표는 엑스(X)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적었다. 극우 정치인 마리옹 마레샬 르펜은 “이슬람 괴저병이 퍼지고 있다. 이는 국가의 패배”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프랑스는 최근 급진 이슬람 세력의 재등장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BBC는 “2020년과 지난해 10월 프랑스 교사 2명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된 뒤 학교에 대한 이슬람의 위협은 매우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부터 파리 내 학교 수십 곳에는 폭탄 테러 협박이 가해졌다. 특히 지난 22일 이슬람국가(IS)의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가 벌어지자 올여름 파리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안보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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