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Oh my godness), 그들(삼성전자·SK하이닉스)은 정말 놀라운 회사입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글로벌 기자간담회. 한국 취재진으로부터 한국의 두 반도체 기업과 엔비디아의 관계에 대해 질문받은 황 CEO가 이렇게 답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메모리를 생산하는 나라"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적인) 진화 사이클은 믿기 힘들 정도(incredible)"라고 했다.
황 CEO는 그러면서 "아마도 여러분은 (두 회사가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를 훨씬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반도체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현재 세계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이끌고, 삼성전자가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황 CEO는 "HBM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고, 기술적 측면에서 '기적'(miracle)과 같다"면서 "HBM 덕분에 우리는 칩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세상을 더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거기(HBM 구입)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라고도 덧붙였다. 엔비디아의 진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힘입은 바 크고, 그런 점에서 두 회사의 기술력이 과소평가돼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SK하이닉스는 전날 HBM3E를 이달 말부터 엔비디아에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HBM 발전 단계에서 5세대로 꼽히는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건 SK하이닉스가 처음이다.
황 CEO는 '삼성전자의 HBM3E는 왜 안 쓰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쓰고 있지 않다"고 확인하며 "검증 중(qualifying)"이라고 답했다. 그간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이를 엔비디아 측에서 인정한 셈이다. 그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 칩 생산을 주문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첨단 칩 생산을 전량 대만 TSMC에만 맡기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엔비디아는 전날 개막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서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H100보다 연산 처리 속도가 2.5배 빠른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B100'을 공개했다. B100을 중앙처리장치(CPU)와 묶어 수십 개 연결하면 매개변수(파라미터)가 최대 10조 개에 이르는 AI 모델도 구동할 수 있다는 게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오픈AI의 최신형 거대언어모델(LLM) GPT-4의 파라미터가 약 5,000억 개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 그보다 20배 강력한 AI 모델 개발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테크업계에선 이를 두고 '일반인공지능(AGI)의 출현을 지나치게 빨리 앞당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황 CEO는 이미 지난해 "5년 안에 AGI가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 황 CEO는 "AGI는 아직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며 "만약 당신이 말하는 AGI가 수학이나 읽기, 독해력, 논리, 의학 등 (성적을 수치화할 수 있는) 시험에서 인간보다 더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인간을 완전히 뛰어넘는 어떤 것'을 뜻한다면 나는 아직 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AGI 시대를 앞당길 AI 반도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당신을 AI 시대의 오펜하이머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질의에는 "오펜하이머는 폭탄을 만든 사람"이라고 일축했다. 자신은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