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깡·닭가슴살깡 엎어지고 나온 '먹태깡'…"힙지로서 MZ 입맛 살폈죠"

입력
2024.03.20 11:00
18면
서희경 농심 스낵개발팀 책임 연구원 인터뷰
새우깡보다 얇게 만들고 기름에 튀겨
파손 문제 해결 위해 다양한 실험도


한우깡, 고등어깡, 닭가슴살깡까지….


농심이 그동안 개발에 도전한 '깡 시리즈' 후보들이다. 몇 년 동안 자사 연구원의 손을 거쳐 다양한 과자가 기획됐지만 원가가 비싸거나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유로 시제품 단계에서 사라졌다.

이토록 개발이 어려웠던 깡 시리즈가 먹태와 만나자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먹태깡 청양마요맛'(먹태깡) 출시 후 8개월, 누적 판매량 1,500만 봉을 돌파하며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내부에서는 먹태깡이 새우깡, 감자깡과 같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내심 새어 나온다.

19일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서 만난 서희경 스낵개발팀 책임 연구원은 "보통 신제품 출시 후 3개월 정도면 평균 매출이 꾸준하게 간다"며 "그동안 데이터를 보면 먹태깡도 깡 시리즈로 자리 잡을 만큼 충분한 수치를 보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농심에서 닭다리 너겟 등 7개의 과자를 개발해 온 서 연구원에게 먹태깡의 기획과 개발 뒷얘기를 들어봤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돌며 '안주 공부'…소스맛집도 찾아다녀


먹태깡의 흥행이 특히 의미 있는 건 성인을 타깃으로 한 '안주용 과자'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제과업계에서는 먹태깡의 흥행 이후 롯데웰푸드의 '오잉 노가리칩'과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먹태이토 청양마요맛' 등 건어물을 주재료로 한 안주용 과자 출시가 쏟아졌다.

먹태깡은 기획 단계부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안주용 과자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서 연구원은 우연히 집에서 맥주와 건어물을 먹다가 바삭한 식감의 건어물을 과자와 접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곧바로 그는 '힙지로'(HIP·힙+을지로)라 불리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과 유명 술집 등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좋아하는 건어물 안주와 어울리는 소스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서 연구원은 "인기 많은 술집에 줄을 서기도 하고 왜 이 집을 찾는지 귀동냥도 하면서 MZ세대의 취향에 맞는 먹거리 정보를 모았다"며 "건어물은 소스와 곁들여 먹었을 때 어울리는 속성이 있어 일부러 소스 맛집을 찾아다니며 특성을 파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새우깡 닮은꼴 먹태깡, 공정은 어떻게 다를까


사내 공모를 통해 입에 잘 붙는 어감의 먹태로 주재료를 정한 후 이를 새우깡에 접목시키기로 했다. 짭짤한 맛의 새우깡도 오래전부터 안주 대용으로 많이 활용되곤 했기 때문. 아울러 새우깡과 같은 스틱 형태로 깡 시리즈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했다. 공법을 감안하면 새우깡 설비 라인의 일부를 활용해 스틱 형태로 만들면 대량 생산이 수월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다만 겉모습에서 먹태깡은 새우깡보다 더 크고 두께는 얇게 만들었다. 건어물을 씹었을 때 바삭한 식감을 살리면서도 입 안에서 풍성하게 느껴지도록 크기를 키웠다. 얇게 만들다 보니 부서지는 것들이 많아 건조 시간을 조절하는 실험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서 연구원은 "파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와 전분의 함량을 어떻게 하느냐가 큰 숙제"였다며 "반죽을 호화(물에 넣어 가열한 전분이 점도가 높은 풀로 변화)하는 정도도 여러 단계로 조정하는 등 끊임없이 실험을 하며 지금의 먹태깡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간은 새우깡보다 짭짤하다. 타깃인 MZ세대의 취향을 고려해 맛을 더 강렬하게 살렸다. 서 연구원은 "새우깡이 출시된 1971년만 해도 '매스마켓'(대량 판매 시장)에서 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맛을 만들어야 했다"며 "지금은 '평균 실종' 트렌드에 맞춰 특정 연령, 성별, 취향 등을 고려해 고객의 입맛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먹태깡은 새우깡과 만드는 과정도 비슷하다. 다만 소금에 구운 후 오일을 뿌려 담백한 맛을 내는 새우깡과 달리 먹태깡은 고소한 건어물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자를 기름에 튀겼다. 여기에 건어물 안주처럼 포슬한 식감을 살리고자 먹태포를 갈아서 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요네즈 분말과 파슬리 시즈닝을 뿌려 먹태에 찍어먹는 소스인 청양고추 마요네즈 느낌을 구현했다.



'포테토칩 먹태'도 흥행…다음은 '디저트' 과자 구상 중


여러 먹태 관련 제품이 쏟아지면서 농심은 '먹태 과자 원조 맛집' 이미지를 굳히기 위한 강수를 던졌다. 먹태깡을 응용해 '포테토칩 먹태청양마요맛'(포테토칩 먹태) '먹태깡큰사발면'을 1월 출시한 것. 15일 기준 포테토칩 먹태는 560만 봉, 먹태깡큰사발면은 240만 개가 팔려나갔다.

서 연구원은 "감자칩은 여러 가지 맛을 입히기 좋아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도화지'로 통한다"며 "포테토칩도 평소 안주로도 즐겨 먹는 과자라 먹태를 적용하기 안성맞춤"이라고 전했다. 담당 연구원에 따르면 컵라면은 과자를 라면의 속성에 맞게 접목시키기 위해 먹태깡처럼 북어포를 갈아서 뿌리고 청양고추와 빵가루를 더해 먹태깡의 정체성을 살렸다.

먹태깡처럼 특정 타깃의 욕구를 반영하는 제품을 기획하겠다는 게 서 연구원의 목표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 맛이 아니더라도 특정 고객층에 입소문을 타면 전체 시장에서 흥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그는 과자도 시장 트렌드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6년 풍성한 간식이 인기를 끌자 통통한 닭다리 너겟이 흥행했고, 최근엔 '홈술' 트렌드로 안주용 먹태깡이 잘 나간다. 서 연구원은 농심의 '빵부장'을 예로 들며 "디저트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겉모습에 포인트를 주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바이럴이 될 만한 요소를 적용해 또 다른 디저트 과자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