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이 시작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3대 성지' 알아크사 사원에선 벌써 경찰과 이슬람교도들 사이 충돌 조짐이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물론 인근 아랍 국가들까지 자극해 역내 분쟁 확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저녁 알아크사 사원에선 진입을 시도하는 무슬림 수백 명과 곤봉을 휘두르며 막아선 이스라엘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경찰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안전과 보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날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시리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등이 '메카에서 초승달이 관측됐다'며 다음 날(11일)부터 라마단이 시작된다고 선언한 날이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모두 성지로 여기는 알아크사 사원에선 매년 이슬람의 '신성한 달'인 라마단 기간마다 폭력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할 때 쓴 작전명 '알아크사 홍수'는 이곳에 파인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모두 이곳을 놓고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 앞서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라마단 기간 알아크사를 향해 집결하자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사원 인근 등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경찰 병력 수천 명을 배치한 상태다. 이스라엘 경찰은 최근 2주 동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테러를 선동한 혐의로 주민 2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사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이날 가자지구 북부에서 2명이 추가 사망해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 수가 총 25명으로 늘어났다고 집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곳에서 6만 명에 가까운 임신부가 영양실조와 탈수, 보건 서비스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가자지구 해안에 임시 부두를 건설해 해상으로 구호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항공을 통한 구호품 투하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육로 수송은 이스라엘에 막힌 탓에 찾아낸 궁여지책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미국 등 서방 관리들을 인용해 부두 건설 등 계획 실행에 최대 60일이 걸릴 수 있으며, 전체 비용은 6개월에 걸쳐 수천만 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집트 소식통을 인용, 양측이 중재국 관계자들과 이날 협상 재개를 위해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양측은 여전히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하마스 정치국장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TV 연설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점령군(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영구 휴전과 이스라엘군 철수를,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을 위한 일시적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라파에 지상군 투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방송 인터뷰에서 "라파 침공은 '레드 라인'"이라고 경고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그곳(라파)으로 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라파는 북쪽의 전란을 피해 14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든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로, 그 아래는 이집트 국경에 막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