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을 지킨 일부 의사들의 실명 명단이 의사 커뮤니티 등에 유포되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자 의료계에서 "심각한 의료윤리 위반이자 폭력 행위"라며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8일 성명을 내고 "집단 내 괴롭힘이라는 사이버 범죄 행위가 의사들 게시판에서 벌어지고, 어떤 제지도 없이 ‘이름을 공개하라’는 부추김과 조롱이 수많은 댓글로 달리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인의협은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만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시민단체다.
최근 의사와 의대생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전원 가능한 참의사 전공의 리스트'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전국 70여 개 수련병원별로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실명, 소속 과, 출신 학교 등 개인정보가 상세히 담겼다. 커뮤니티 회원들 다수는 명단 속 전공의들을 '참의사'라고 조롱하는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인의협은 색출 작업을 두고 "윤리 문제를 넘어 명백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폐쇄적 의사 사회에서 집단 따돌림은 피해자에게 매우 심각한 폭력"이라며 "다수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행위는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를 남긴다"고 했다. 이어 "이런 사실을 다른 집단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의사들이 괴롭힘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부연했다.
특히 이런 일이 의사 파업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의협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2020년 파업 때도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이번에도 또 아무런 반성 없이 (색출과 낙인 찍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비윤리성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특히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한다"고 적었다.
인의협은 의사 집단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환자 옆에 남겠다고 결정한 의사들을 조리돌림하는 문화를 청산하지 않는 이상 국내 의사들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집단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 의사 사회가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 집단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사법적인 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현장을 지키는 전공의의 실명 등을 게시하는 행위나 협박성 댓글을 다는 행위를 형사처벌 가능한 범죄행위로 보고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7일 경찰 관계자는 "중한 행위자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