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지 3주가 다 돼가면서 의료현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해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되고 있다.
의사들은 의사에게 부여된 소명의식을 잊고 환자 곁을 떠난 게 여러 번이다. '개원의 협의회'가 지금의 대한의사협회로 탈바꿈한 1995년 이후로만 봐도 진료 거부, 휴진 등으로 의료현장에 크고 작은 혼란이 발생했다.
1996년 11월 의협이 지부별로 전국 순회 '의료정책 바로세우기 대토론회'를 여는 바람에 전국 시내 병·의원들이 토론회가 열리는 날이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표면적으로는 토론회 참석이 휴진 이유였지만 당시 한방정책관을 신설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맞서는 집단 휴진이었다. 서울 시내에서만 4,100개 병·의원 중 절반 이상이 휴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1997년 상반기엔 중앙대 부속병원 전공의, 전문의 등이 진료 거부에 나섰다. 중앙대재단이 '메디컬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하고도 10년째 지키지 않은 것이 계기였다. 의대생 450여 명이 3월부터 수업 거부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중앙대 부속 필동 및 용산병원 인턴(수련의) 54명이 3월 말부터, 전공의 167명은 4월 중순부터 병원을 떠나 몇 달에 걸쳐 환자 불편을 초래했다.
1999년 말과 2000년엔 의약분업이 최악의 의료대란을 불러왔다. 1999년 11월엔 전국 의사 2만여 명이 집단 휴업한 뒤 의약분업 반대집회에 참석해 병의원 곳곳에서 진료 차질이 빚어졌다. 2000년 4월 4일 개원가가 첫 파업(진료 거부)에 돌입하면서 전국 의원 76%가 문을 닫았다. 전공의들도 진료 거부에 나서 6월 20일부터 의료대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네의원 92.3%가 휴진에 동참했고 전공의 80%가량이 자리를 비웠다.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8월 이후에도 전임의, 교수까지 가세하면서 의료계 파업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의약분업 반대 진료 거부로 환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병원을 전전하던 노인 환자가 사망하고 수술이 연기된 뇌종양 환자가 자신의 처리를 비관해 극단 선택하고, 입원을 거부당한 위염환자가 숨지는 등 각종 피해가 발생했다.
2014년 3월엔 63곳 병원의 전공의 7,200여 명을 포함한 일부 의사들은 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 도입과 영리병원 추진을 막기 위해 또다시 의료현장을 떠났다.
2020년 8월엔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막기 위해 의협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당시에도 집단행동의 주축은 전공의들이었다. 이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시작한 때라 의료현장의 혼란은 더욱 컸다.
해외에서도 의사들이 의료 정책이나 임금 인상 등의 문제로 파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2년 영국 의사 노동조합인 영국의학협회(BMA)는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연금제도 개편에 반발해 파업을 벌였는데, 이때가 40년 만의 첫 파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젊은 의사들의 파업이 잦아지고 있다. 영국은 1948년부터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고 국민 세금으로 NHS를 운영하고 있어 일부 개업 의사를 뺀 대부분의 의사가 국가 소속인데, 최근 들어 임금 갈등이 심하다. 지난달 말에는 수련의(Junior Doctor)들이 임금 인상을 이유로 5일간 파업을 벌였다. 그 빈자리는 전공의, 전문의 등이 메웠지만 이로 인해 9만 명 이상의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 예약이 변경되거나 취소된 걸로 알려졌다. 파업은 지금도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 1월엔 독일 개원의들이 종합병원 의사의 임금 인상과 개원의 수가 인상 요구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집단 휴진했다. 당시 독일 전체 10만 개 개인 병원 중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에도 의사들이 파업하거나 집단사직해 의료 공백이 발생했다.
그러나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해외에서 의사들이 집단 진료 거부를 하거나 파업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일본 후생노동성·의사협회와 면담한 결과를 보면 일본 의대 정원은 2007년 기준 7,625명에서 2019년 9,33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 의사 단체의 조직적인 반발은 없었다.
독일은 2018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1~2%씩 늘려 2022년 기준 1만1,752명이 됐다. 올해 중 5,000명 이상 더 늘릴 계획이지만,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가 없다고 한다. 미국은 오히려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했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는 지난 2006년 의대 입학 정원을 2002년 대비 30% 확대할 것을 촉구했고, 미국의사협회(AMA)는 지난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사 부족 문제를 꼽으며 인력 강화를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 진료 거부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의협이 의료계 주요 갈등 국면에서 '총파업' 카드를 꺼내든 것도 여러 번이다. 파업이 노동자의 권리라고 하더라도, 일각에선 다른 직군과 달리 의사 직역의 진료 거부는 환자 생명과 연관된다는 측면에서 잣대가 더 엄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파업 권한이 있는 노동조합이 파업하더라도 필수업무는 유지해야 하는데, 의사의 경우 응급실, 수술실, 분만실 등에 필수적으로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필수유지 업무조차 고민하지 않고 (병원 밖으로) 나가면 환자 생명은 어떡하라는 거냐"고 비판했다.
전공의들이 파업하면 병원급 이상 의료체계가 사실상 마비되고, 정부는 이를 눈감아주는 역사가 반복돼 왔는데도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송 부위원장은 "전공의는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로에 놓여 있다"며 "수련 시스템을 정확하게 마련하도록 정부도 고민해야 하는데 2,000명 증원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국장은 "정부가 과거에 원칙대로 대응하지 않아 의사들 사이에서 생긴 '정부가 우리를 못 이긴다'는 자신감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며 "정부가 법과 원칙대로 대응하는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