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7시(현지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말 그대로 ‘회색 도시’였다. 짙은 먼지가 하늘을 뒤덮으면서 건물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개 속에 갇힌 듯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5m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는 행여 옆 차량과 부딪힐까 주행 속도를 줄였고, 코로나19 확산 위협이 줄었어도 출근길 직장인들과 등굣길 학생들은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희뿌연 하늘의 위험성은 수치로도 나타났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대기질 분석업체 아이큐에어(IQAIR)는 이날 오전 7시 기준 하노이 공기질 지수(AQI)가 206으로, 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AQI 전체 6개 단계 중 다섯 번째인데, '매우 건강에 해로운' 수준이다. 같은 시간 한국의 AQI 지수는 30(1단계·좋음)을 기록했다.
초미세먼지(PM2.5)도 입방미터(㎥)당 187㎍(마이크로그램)에 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지침(m³당 5μg)보다 36배 높다. 인간 생존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활동인 호흡이 오히려 생명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2일에도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하노이발(發) 항공편 100여 대의 운항이 중단됐다.
하노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가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에서는 지난달 수도 방콕과 북부 치앙마이 등에서 초미세먼지가 건강에 해로운 수준(188.1μg/㎥)까지 치솟자 정부가 기업, 학교에 재택근무 및 휴교를 권고했다. 태국 정부 안전 기준치(24시간 평균 37.5㎍/㎥)보다 5배나 높았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상황도 마찬가지다.
잿빛 하늘은 건강까지 위협한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는 5일 “지난해 만성 기관지염, 폐암, 천식 등 대기오염 관련 환자가 1,050만 명에 이르렀다”며 “초미세먼지가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재 국제환경 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도 작년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공기가) 가장 오염된 40개 도시 중 37곳이 동남아에 위치한다”며 “2017년 한 해에만 평균 기대수명이 1.5년 줄었다”고 분석했다.
동남아를 숨 막히게 하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①노후한 교통수단 ②40%를 웃도는 석탄화력 발전 비중 ③무분별한 화전 농업 ④기후변화로 길어진 건기 등이 뒤섞여 있다. 날이 갈수록 대기오염이 심해지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교통 인프라 미비,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급증하는 전력 수요, 낮은 친환경 발전 여력 등의 현실을 감안하면 어느 것 하나 개선이 쉽지 않다.
물론 각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태국은 이달과 다음 달, 2개월 동안 공군 항공기를 활용해 77개 주(州)에 인공 강우를 뿌린다. 작년 12월부터는 ‘논밭 태우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집중 단속을 하고 있다. 베트남 당국도 차량 증가 통제, 노후 차량 단속, 나무 심기 등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지난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두고 고층빌딩 옥상에서 물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환경단체 ‘비차라 우다라’ 노비아 나탈리아 공동 설립자는 “석탄 화력발전소처럼 근원적인 오염원을 찾아내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