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양구에서만 80%가 죽었다… 멸종위기종 산양이 보내는 SOS

입력
2024.03.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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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도심동물들] <7> 폭설∙울타리에 로드킬에 시달리는 천연기념물 산양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얼마나 버둥거리다 죽어 갔을까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을 위해 설치한 울타리가 없었다면 건너오기라도 했을 텐데요."

지난달 27일 오후 폭설이 내린 강원 인제군 46번 국도인 고성 방향 진부령 도로 주변에서 산양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30년째 설악산에서 산양 보호 운동을 하는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사체를 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3, 4세로 추정되는 암컷 산양은 나뭇가지에 목이 걸렸는데, 탈진해 이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박 대표는 "ASF 방역 울타리 주변에 산양이 다닌 발자국이 남아 있다"며 "결국 내려오지 못하고 산으로 올라갈 힘도 없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유독 잦은 폭설로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Ⅰ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민가나 도로가로 내려오는 게 속속 목격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박 대표와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과 약 6시간 동안 미시령∙한계령∙진부령 도로 주변을 돌며 발견한 산양만 40여 마리에 이른다. 설악산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300여 마리 가운데 10분의 1 이상을 만난 셈이다.


사실 산양은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조사하지 못하는 지역까지 포함해도 전국에 2,00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산양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폭설로 인해 산양이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고, 힘을 비축하기 위해 또는 달아날 힘이 없어서 사람을 마주쳐도 쉽게 도망가지 않아서였다.

실제 도로가에서 눈을 마주친 산양 중 절반가량은 사람을 주시하며 눈만 끔뻑일 뿐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폭설로 그나마 회갈색의 산양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가 많은 지역에서는 산양의 털색이 보호색처럼 작용해 분간하기 어려웠다. 박 대표는 "예년에 비해 도로가로 내려온 산양들이 많다"며 "로드킬 위험이 크다. 올해 3월이 지나면 사체가 많이 발견될 것 같다"고 전했다.

2019년부터 죽은 산양 수만 545마리



박 대표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문화재청에 들어온 멸실(사망)신고 기록을 보면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545마리가 죽었는데 올 들어서만 261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마리, 2020년 97마리, 2023년 85마리로 증가 추세임을 감안해도 올해 사망한 수가 월등히 높다. 구조한 산양 가운데 사망한 비율도 예년보다 높았다. 환경부가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구조한 산양 수를 보면 2019년에는 구조한 37마리 가운데 사망한 수는 1마리였지만 지난해에는 35마리 가운데 13마리, 올해 2월 기준으로 8마리 가운데 7마리에 달했다. 국립공원공단이 지난해 11월부터 2월 말까지 구조한 55마리 가운데서도 35마리가 죽었다.

올해 산양의 사망 수가 늘어난 데에는 ①잦은 폭설로 지표면이 얼어붙어 산양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점 ②산양 발견 및 신고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정진 국립공원공단 생태복원부 팀장은 "보통 폭설이 와도 다음 날 눈이 녹으면 산양이 먹이를 찾을 수 있는데, 올해는 비가 내리면서 지표면이 얼어붙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상진 강원대 산림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그간 멸종위기 종복원 사업을 통해 산양 개체 수가 꾸준히 늘어났고 ASF를 막기 위한 멧돼지 포획 등으로 산림 내 사람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발견 신고가 늘어나는 것도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탈진하거나 위기에 처한 산양을 구조하고, 지자체와 일부 기업은 먹이 주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ASF 방역 울타리, 산양 이동 막아

먼저 ASF를 막겠다고 설치한 울타리가 산양의 이동을 막아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울타리 부근에서 구조가 필요하거나 이미 죽은 산양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1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설치된 울타리는 광역울타리와 전기울타리 등을 포함해 총 2,886㎞에 달하며 설치에만 1,550억 원이 들어갔다.

특히 올해를 포함해 비무장지대(DMZ)인 화천군과 양구군에서 산양이 죽는 사례가 집중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사망한 545마리 중 416마리(76.3%)가 이 지역에서 죽었다. 이 지역에는 ASF방역 2차 울타리, 농가가 친 울타리 등이 집중돼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 주변에서도 사망한 비율도 12.4%에 달한다.

정 국장은 "지자체가 설치한 울타리에 ASF 방역 울타리가 둘러쳐져 산양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라도 단계적 이동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도 "울타리는 생태계 단절 요인이 된다"며 "이제는 방역보다 울타리로 인한 피해가 크다고 한다면 울타리 제거 등 야생동물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먹이주기 행사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행사용으로 우후죽순 진행되고 있는 산양 먹이 주기 역시 그 영향 등을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도 자연재해 발생 시 제한적 먹이 급여는 필요하지만 이외에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먹이 주기는 자연재해 발생 시 폐사율 감소, 개체군의 회복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사람이 급여한 먹이에 적응돼 자연에서의 생존력 약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감소와 질병 전파 등의 부작용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함에도 지자체나 기업들이 먹이 주기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통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 교수는 "일회성 행사식의 먹이 주기는 특별히 산양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지양하되 필요하다고 하면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환경부는 울타리가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피해를 주고 생태계를 단절시킨다는 의견이 있어 올해 이에 대한 조사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국장은 "산양의 피해가 매년 갈수록 더 커지고 있지만 울타리 폐해나 먹이 주기 영향 등에 대한 연구나 조사 없이 현상 대처에만 급급하고 있다"며 "산양을 포함 야생생물이 입는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한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동시에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성·인제= 고은경 동물복지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