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말고" 이스라엘 야당 대표 만나는 미국 고위 인사들, 왜?

입력
2024.03.05 17:30
방미한 간츠, 해리스 부통령 등 면담
"말 안 통하는 네타냐후 패싱" 평가
미 국무부는 "전시 내각 만남일 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스라엘 야당 대표를 잇따라 만나는 것을 두고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번번이 대립각을 세워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사실상 '패싱'하고, 그의 정적(政敵)을 대화 상대로 택한 것으로 해석할 법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오랜 우방 관계인 미국·이스라엘의 정상 간 파트너십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진단도 많다.

미 부통령 '네타냐후 라이벌'에 "민간인 피해 우려"

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이스라엘 야당인 국민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를 만났다. 백악관은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110여 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해리스 부통령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스라엘이 공격 중인 가자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인도주의적 계획을 수립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번 회담을 두고 현지에서는 '바이든의 네타냐후 패싱'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차기 이스라엘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되자, 같은 해 11월 국민통합당은 전시 내각에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정책에 더 개방적인 간츠 대표는 전쟁 수행을 둘러싸고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 극우 관료들을 비판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해 왔다.

'심기 불편' 네타냐후, 이 대사관에 "간츠 만나지 말라"

미국 입장에서도 사사건건 부딪히는 네타냐후 총리보다는 '말이 통하는' 간츠 대표를 대화 상대로 삼고 싶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네타냐후 총리가 꾸린 극우 성향 연립정부의 전쟁 방식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는 탓이다. 미 보수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리처드 골드버그 수석 고문은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간츠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네타냐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평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네타냐후가 2022년 12월 재집권 후 1년이 넘도록 워싱턴을 방문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간츠의 미국 방문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했던 네타냐후 총리는 재차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실제 그에게 간츠 대표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최근 이스라엘 여론조사에서 국민통합당은 네타냐후 총리가 소속된 여당 리쿠드당의 지지율을 앞서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은 (총리실로부터) '간츠와의 만남을 보이콧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네타냐후가 간츠의 방미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전했다.

간츠 대표는 이날 워싱턴 의사당을 찾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도 면담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면담도 앞뒀다. 다만 미국 정부는 '네타냐후 대신 간츠를 대화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일각의 해석에는 일단 선을 그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면담은 간츠가 전시 내각 구성원 3명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며 "그는 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는지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투표권과 몫이 있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