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버지 혼자 돌본 딸, 사망보험금은 오빠들과 ‘사이좋게’ 나눠야 할까

입력
2024.02.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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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유진 단편소설 ‘어화가 온다’(문학사상 2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딸 바보’ 타령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남아 선호 경향이 줄면서 2022년 기준 여야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출생성비(104.7명)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환영할 일이다. “딸이 키우기도 편하고 다 커서도 좋다”라는 말을 마냥 칭찬으로 여겨도 될까. 행간에 ‘딸에게 지우는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문학사상 2월호에 실린 범유진 작가의 단편소설 ‘어화가 온다’는 부모님의 장례를 마친 3남매가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원래 ‘아들아들딸딸’의 4남매이지만, 늦둥이 막내는 발인을 마치자마자 회사 일이 바쁘다며 자리를 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어머니 ‘박 여사’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던 57세의 셋째 딸 ‘이남’을 향해 오빠들은 말한다. “(사망)보험금도 결국 유산이지. 우리 남매끼리 사이좋게 나누어야 하지 않겠냐.”

이남이 보험금을 온전히 가지려면 넘어야 하는 산이 또 있다.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로 죽은 박 여사가 아버지와 서로 허리를 끈을 묶고 있던 탓에 보험사는 동반자살을 의심한다. 출장 네일아트로 간신히 번 돈 150만 원으로 매달 부모님을 부양하며 아버지 친구를 통해 덜컥 든 보험금까지 내야 했던 이남은 과연 보험사로부터, 또 생활비 한 번 댄 적 없던 오빠들로부터 이를 지킬 수 있을까.

50대 여성 이남은 치매 노인을 돌보는 ‘한국 사회의 얼굴’ 그 자체다. 2022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치매 노인을 집에서 보살피는 가족 125명을 조사한 결과 딸이 절반에 가까운 43.8%였고, 연령별로는 50대 이상(36.8%)이 가장 많았다(한양대 임상간호대학원 김다미 석사 논문). 한국의 간병 문제에는 이처럼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 간병'에 더해 가족 중 여성이 돌봄 책임을 떠안는 성차별이 겹쳐있다.

소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돌봄 노동의 굴레를 그려낸다. 박 여사는 딸인 이남을 “못된 짓 하는 것까지 아주 똑 닮았어”라며 자신의 어머니 ‘향분’에 겹쳐 보며 미워하는데, 박 여사 역시 어머니로부터 차별을 받고 자란 딸이다. 그는 물고기 비늘처럼 피부에 각질이 생기는 어린증을 앓는 어린 이남에게 “어화(인간의 얼굴을 한 물고기 요괴)의 후손인 향분의 피를 이은 탓”이라며 부양과 돌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위협한다.

이남은 스스로 “도리를 다하라”는 말에 평생을 시달리며 향분과 박 여사의 비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동생인 ‘이영애’의 어린증은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한다. 이를 저주가 아닌 “특별한 존재”의 상징이라고도 일러둔다. 그런 이영애의 날들은 할머니와 어머니, 또 언니와도 다를 것임을 소설은 분명히 말한다. “박 여사님. 어머니. 엄마. 비늘을 준 건 당신이라도, 그것은 이젠 다른 것이 되었어요. 그래요. 그런 법이지요. 바뀌는 법이지요.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도리지요”라는 이남의 말처럼.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