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유지 위한 압류금지 채권, 대법 "채무자가 입증해야"

입력
2024.02.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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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 원 초과 증명 책임 소재가 쟁점
하급심 "은행 증명 못 해, 돈 돌려줘야"
대법원 "채무자가 증명해야... 재심리"

A씨는 2012년 9월 법원으로부터 180만 원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받았다. A씨가 빌린 돈을 갚지 않았으니 민사집행법상 압류가 금지되는 예금 등을 제외한 180만 원을 대부업체에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압류대상은 156여만 원이 예치돼 있던 A씨의 B은행 계좌 등이었다.

하지만 A씨는 "156여만 원 중 150만 원은 압류할 수 없다"며 B은행을 상대로 예금반환 소송을 냈다. 채무자의 생활에 필요한 한 달치 생계비는 압류할 수 없다는 민사집행법에 근거해 150만 원이 그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B은행 측은 "압류금지 금액은 채무자의 모든 금융계좌를 통틀어 인정돼야 한다"면서 "A씨가 B은행에 예금해둔 돈이 압류금지 대상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하급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압류 명령 후 A씨가 다른 은행 등에서 150만 원을 인출했거나, 해당 금액 이상을 따로 보유하고 있다고 볼 증거를 B은행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은행 측이 압류금지 금액 범위까지 압류명령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만한 사정을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8일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채무자가 '한 달치 생계유지에 필요한 돈이므로 압류할 수 없다'며 예금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낸 경우, 해당 예금이 압류 당시 채무자의 개인별 예금 잔액 중 압류금지 대상이라는 사실은 예금주인 채무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A씨가 제출한 계좌정보 통합조회 내역과 B은행 계좌 입출금 내역(2019년 10월 기준)만으로 15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압류 및 추심명령에 의해 압류된 각 계좌의 입출금 내역 등 추가 자료 제출이 없는 이상 B은행 계좌에 남아 있는 예금이 압류금지 대상인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이 대법원 판례에 상반되지 않는 데도, 소송 가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소액사건'을 심리한 이유에 대해 "대법원이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하급심에서 엇갈리는 법령 해석에 관해서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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