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집에 대한 들뜬 '로망'이 있다. 일생에 번듯한 집 한 채는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닭장 같은 아파트 말고 내 인생을 즐길 만한 넓은 잔디 위에 괜찮은 단독주택을 향한 아름다운 꿈과 희망 말이다. 그러나 주택이라는 재화가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인 위치를 대변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국민평수 아파트'를 소유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주거비용 때문에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겠는가. 세상에는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경제적 투자와 재산 가치를 대표하는 공동주택에서부터 행복의 상징인 단독주택까지 다양한 집이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최근 일본의 주거 공간은 현대사회에 맞춰 건축적 관점에서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현대주택을 선보인다. 혁신적인 주거의 개념으로 무장한 세상의 모든 주택을 찾아가 본다.
거주에 관한 개념은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게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주거 공간을 인간 실존성의 근본이며, 물리적 토대로 장소와 공간을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주의 개념은 근대사회 속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장소를 현상학적 존재의 자리보다는 하나의 사회과정으로 보고 도시에 대한 권리로서 도시권을 주장한다. 이렇듯 거주는 오랫동안 인간의 기본권이지만 현대사회로 올수록 주거 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지 위 단독주택을 원하는 것은 사치가 됐다.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주거 양식이 공동주택으로 변화하는 사이 도시의 주거 환경은 열악하고 획일적으로 변했다. 내가 눕는 공간 위·아래로 수십 명의 타인이 포개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대의 공동주택은 학교나 감옥과 같은 권력의 공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현대의 건축가들은 나름대로 거주에 관한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만들어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 결과 작은 주택이지만 기존과는 다른 공간구성을 갖게 되고 공동주택은 공동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변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건축사무소인 사나(SANAA)는 세지마 가즈오와 니시자와 류에로 구성된다. 세지마는 주거학이 전공이고 니시자와는 건축학 전공이라 서로 다른 전공의 협업으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재해석하고 공간화하는 데 탁월하다. 이들은 건축의 구조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단순하고 세련되게 공간을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덕에 다양한 건축 설계를 진행하지만, 협업과 동시에 개인적인 소규모의 건축 설계도 한다. 도쿄 외곽의 모리야마 하우스는 니시자와가 설계한 매우 독특하며 새로운 개념의 단독주택이다. 주택은 기본적으로 편하게 머무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부공간을 하나로 설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주택은 집에 필요한 공간을 따로따로 나눠 대지에 뿌려놓은 것처럼 배치했다. 심지어 화장실이 외부에 별도로 위치한다. 여러 실이 다양한 위치에 있고 실 사이 외부공간은 동선처럼 이용했다. 조경으로 정원도 꾸몄다. 있는 듯 없는 듯 단순한 박스 몇 개만 놓인 것 같은 집이지만 기존의 주택 개념을 완전히 전복한 새로운 주택의 탄생이다. 그 변화로 일상의 불편함보다 더 큰 공간의 경험이라는 보상이 뒤따른다.
도쿄에는 일본 젊은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의 파격적인 단독주택도 있다. 하우스 엔에이는 각 실의 바닥과 천장은 막고 나머지 벽체는 유리로 하거나 아예 비워두는 방식으로 작은 박스를 만들고 이 박스 유닛을 필요에 따라 차곡차곡 쌓아서 단독주택을 만들었다. 지상층은 귀여운 자동차를 위한 주차 공간이고 위쪽은 다양한 공간구성의 주거 공간이다. 층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실들을 다양한 높이와 위치에 놓아 사람이 마치 미로와 같은 공간에서 숨바꼭질하는 듯 보인다. 사생활이 주변의 시선에 그대로 드러나고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텐데도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개방적인 공간을 드러낸다.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공간은 완전히 불투명한 벽체로 막는 것이 아니라 유리 박스 내부에 커튼 등으로 가리는 방법으로 보호한다. 이런 방식은 먼저 주택 전체를 가볍고 투명한 공간으로 결정하고 나서 문제가 되는 공간을 해결해 처음 결정한 건축의 개념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냉난방 설비·안전·프라이버시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대가로 공간의 자유로움과 다양함 그리고 투명성이라는 현대건축의 개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앞 사례와 같이 조금은 비현실적인 단독주택을 설계한 건축가가 다세대 주택을 설계하면 어떨까. 이번에는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과는 전혀 다른 예상 밖의 주택을 제안한다. 마치 작은 박공지붕의 단독주택 여러 채가 수평, 수직으로 포개지고 쌓아져 만들어진 집 같다. 언뜻 보면 살짝 당황스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주택 유닛은 실제 생활이 가능한 공간이며 이런 유닛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사이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 된다. 그 공간에 쉴 수도 있고 이웃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옆집이나 아랫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동선이 된다. 한국의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주차에 할당한다. 2층부터는 각 세대의 유닛을 배치하면서 층마다 동일하게 쌓아 올린다. 그것에 비하면 도쿄의 다세대 주택은 파격 그 자체다. 형태나 공간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이런 파격이 만드는 새로운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사용자의 다양한 삶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젊은 건축가 아키히사 히라타가 설계한 도쿄의 또 다른 공동주택인 트리니스 하우스는 주택 안팎으로 온통 나무가 심겨 있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주택이다. 언뜻 보면 주택의 규모가 주변의 주택들과 비슷하고 일본에서 노출콘크리트의 단순한 형태는 익숙한 건축물이라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주택의 아랫부분은 커다랗고 견고한 콘크리트 박스인데 위로 갈수록 점차 투명한 창이 많아지고 크기가 커지면서 자리를 잡는다. 이곳은 공간과 형태를 만드는데 동일한 방식의 형태가 지속되면서 다양한 스케일의 변주라는 소위 프랙털 개념을 이용한다.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을 건축과 공간에 적용한다는 현대건축의 개념은 그래서 흥미롭고 새로운 건축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인 주거 공간에서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을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용자의 속사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건축의 개념과 그에 따른 공간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새롭고 독특한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네 선친들은 집을 정할 때 양택(陽宅)이라 하여 자연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결정했다. 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남향, 집 뒤쪽의 산과 앞쪽의 수공간, 집에서 바라보는 안산의 방향 등 주변환경과 풍수지리를 통해 최적의 조건을 선택했다. 이러한 전통주택 중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 양식으로 바뀌고 그에 따른 경제성이 강한 공동주택이라는 주거 양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주거 공간이 살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되니 상품성의 극대화를 위한 주택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와는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생활을 생각해 보면 주거 공간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 현대 건축가가 설계한 단독주택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시·공간 속에 새로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현실적으로 불편할 수도 있고 우리 생활 양식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작은 주택에 숨어 있는 건축의 개념을 보면 이 집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작지만 큰 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