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가 불 지핀 北 여성 지위 논란... 단속 걸리면 스키니진 찢겨[문지방]

입력
2024.02.25 13:00
'주애 후계자설'에 북한 가부장적 문화 공고해 이견 팽팽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담긴 여성 변화상 보니
계획경제 와해로 장마당 통해 가계 책임지는 여성 지위 향상
당국은 '전통적 여성상' 강조하며 체제 유지 기여토록 통제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가 과연 후계자인지 아닌지를 놓고 정부와 학계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 매체에 공개된 주애의 행보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후계자 수업이 한창입니다.

당초 주애는 미사일 발사 현장을 비롯해 군사 분야 이벤트에 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제·민생 분야인 신축 최신 닭공장(양계장) 현장 지도에 나설 정도로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군 서열 2위인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주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공개되는가 하면, 이례적으로 보도 사진의 정중앙을 김 위원장이 아닌 주애가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이에 비춰 북한 정권이 '주애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이 경제난에 따른 내부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후계자로 키우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장담하기 이릅니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 사회에서 여성이 지도자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견해와 주장이 여전히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북한에서 여성의 삶은 어떨까요? 통일부가 지난 6일 공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는 여성의 지위 변화와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담겼습니다. '북한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보고서는 최근 10년간 북한을 탈출한 6,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는데, 응답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81.8%에 달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가정 내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됐다는 점입니다. 1990년대 중·후반 최대 40만 명가량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계획경제는 사실상 마비됐습니다. 그 자리에 '장마당'으로 불리는 시장 경제 요소가 들어섰죠. 장마당 상인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였던 여성들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은 배급도 제대로 못 받는 실정이니, 가정 경제는 아내들이 '장마당 자영업'을 통해 해결해야 했습니다.

"여자가 나가서 번 돈으로 가정을 부양하니까 남자들이 여자 말을 듣게 되고, 남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여자들의 큰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 요새 여자들은 남편에게 낮전등(낮에 켜진 전등처럼 쓸모없다는 뜻), 멍멍개라고 부른다." 2019년 탈북한 A씨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A씨처럼 여성의 시장활동이 가정 내 여성의 위상 향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응답이 70%에 육박했고, 5명 중 1명꼴로 "남편보다 위상이 높아졌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사회 전반은 가정의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해가 갈수록 개선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남녀가 평등하다고 답한 비율은 30%에 채 못 미쳤고, 여성을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이자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복장 단속입니다. 2018년 탈북한 B씨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거나, 짝 달라붙는 청바지는 입는 건 단속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키니진을 입다가 단속당하면 찢기기도 합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단속의 대상이라는 말도 전했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여성을 출산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김 위원장은 2021년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대회에 서한을 보내 "여성들이 아들과 딸을 많이 낳아 키우는 것은 나라의 흥망, 민족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사"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적 여성보다 전통적 여성상을 강조하기 위해 복장 단속에 열을 올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도 만혼과 출산율 저하, 이혼 증가 등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경제난에 더해 보육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여성들은 결혼을 꺼리게 됐습니다. 2011년 이전 북한 주민들의 결혼 연령은 25세 이하가 66.8%였지만, 2016년 이후엔 48.5%로 크게 줄었습니다. 평양만 놓고 보면 25세 이하는 20.6%, 30세 이상은 34%, 평균 결혼 연령은 28.1세로 집계됐습니다.

북한 이탈주민들의 평균 자녀수는 1.6명이었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0.78명과 비교하면 자녀를 많이 낳고 있지만, 생산설비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북한에선 여전히 노동력 의존도가 높아 인구 감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이혼을 자본주의 병폐로 간주하고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인식합니다. 합의 이혼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이혼은 재판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딱 한 번 이혼하고 싶은 사람들을 배려해 이벤트 같은 걸 했어요. 줄을 엄청 서더라고요. 이후에 지방에 있는 이혼재판소를 다 없애고, 이혼을 되게 어렵게 만들었어요." (2019년 탈북한 C씨)

이혼자에 대한 불이익도 상당합니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 김일성종합대학교 같은 엘리트 코스에 진입할 수 없고, 혼사도 막힌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입니다. 군인이 이혼하려면 군복을 벗어야 하고, 당원권이 박탈되거나 평양 거주자는 지방으로 추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국제 여성의 날(3월 8일)을 공휴일로 삼고,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해 '전국어머니대회'를 개최합니다. 언뜻 보면 여성과 어머니에 대한 존중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강조한 것은 자녀 출산 및 교육을 통해 북한 체제를 수호할 훌륭한 인민을 기르라는 의미이며, 여성을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로 여기며 존중하는 것은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애가 이런 뿌리 깊은 북한의 차별적 젠더 문화 속에서 후계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북한 출신의 한 교수는 지금 북한 당국의 '주애 띄우기'에 대해 "사실 북한 주민들은 감시의 시선 앞에서만 환호할 뿐 뒤돌아서면 개인의 부를 어떻게 축적할까, 한국 드라마 다음 편은 무슨 내용일까가 더 큰 관심사"라고 전했습니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