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 20일 오후 경기 여주시 상거동 경기 반려마루. 이곳은 16만5,200㎡ 부지에 경기도가 489억 원을 들여 지어 지난해 11월 문을 연 ‘반려동물테마파크’다.
국내 최대 규모의 반려동물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경기도의 자랑과 달리 단지 안은 썰렁하다 못해 황량했다. 자원봉사자 몇 명만 동물보호동을 오갈 뿐 반려동물을 동반한 방문객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100대 이상 수용이 가능한 주차장에 차는 5, 6대밖에 서 있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화성시 팔탄면의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 687마리가 새 주인을 찾기 전 이곳에서 임시 보호조치되면서 주목을 받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경기도에 따르면 반려마루 방문자는 정식 운영에 들어간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자원봉사자, 반려동물 문화교육 수강자 등 4,124명으로 하루 평균 34명 수준이다. 집계하지 않는 일반 방문객까지 포함해도 하루 평균 50명을 넘지 못한다. 배태근 경기도 반려동물산업팀장은 “평일엔 자원봉사자 반려동물 관련 교육 수강자 20~30명만 찾는다”며 “시설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반려마루는 2015년 5월 당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지역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며 야심 차게 계획한 사업. 하지만 개장 초기의 초라한 성적표는 반려인들을 끌어들일 인프라는 구축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공영시설부터 문을 연 탓이 크다. 실제 A구역(공공구역)엔 유기견과 유기묘를 보호하는 동물보호동 3곳과 입양·관리동, 반려동물 교육 문화센터 등 5개 동이 운영 중이었지만 반려인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B구역(공영구역)은 흙바닥이 드러나 있는 등 아직도 허허벌판이었다. 공사 자재가 곳곳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B구역은 반려인을 위한 어질리티파크(개와 반려인이 짝을 이루어 장애물을 넘는 경기장), 반려동물 놀이터, 피크닉존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공사가 지연되면서 지난해 문을 열지 못했다. 배 팀장은 “B구역은 올해 말 준공할 계획인데, 세부 운영계획과 민간 위탁 사업자 선정 등 후속 절차를 감안하면 내년 개관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객이 기대만큼 찾지 않자 주민들과 인근 지역 상인들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경기 반려마루 인근 한 대형 아웃렛 의류매장 직원은 “기대와 달리 반려마루 개장 이후 고객은 늘지 않았다”고 허탈해했다. 여주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시설이 부족하다”며 “지역농산물 판매장과 같은 상업·판매시설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경기도에 건의했다.
반려마루가 활성화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도지사가 바뀌면서 사업계획이 대폭 축소된 탓이다. 이 사업은 2016년 중앙투자심사까지 거쳐 동물보호시설이 있는 공공구역(사업비 358억 원)과 쇼핑몰과 리조트, 루지 등 숙박·체험시설이 있는 민간구역(200억 원)으로 나뉜 관광형 테마파크로 추진됐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2018년 이후 경기도는 민간사업자에 대한 특혜가 우려된다며 쇼핑몰과 리조트(빌라형), 루지 시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추모관을 제외한 민간사업 전체를 공영사업으로 바꾼 것. 여주375아울렛 상인회 관계자는 “최초 계획한 민간체험시설이 대폭 축소되면서 단순 동물보호시설로 전락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설을 건립하려는 목적이 바뀌면서 활용도가 낮은 '반쪽 시설'이 됐다고 지적한다. 박우대(수의사) 펫인쥬동물메디컬센터 원장은 “지역경제 활성화가 목표였다면 관청이 주도할 게 아니라, 민간 주도로 상업적인 요소를 결합해 추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남영희 경기도 반려마루팀장은 “아직 일반인 방문은 많지 않지만 자원봉사자와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의 방문은 이어진다”며 “공영구역 개장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반려견 관련 이벤트 등을 고민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도 마련 중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