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는 개발자 김모(25)씨는 필수템인 슬리퍼를 사기 위해 쿠팡, 네이버를 뒤져봤다. 2만 원 가까운 가격에 망설이다 요즘 온라인 광고를 자주 접하는 중국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 들어갔다. 그가 고른 슬리퍼는 단돈 8,000원. 배송 기간 열흘을 감수할 만한 가격이었다. 그는 "쿠팡, 네이버에서 사도 중국산이 많은데 웃돈 주고 살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대학 조교 이모(25)씨도 요즘 '1일 1알리' 중이다. '짝퉁 제품' 걱정에서 자유로운 생활필수품을 주로 담는다. 최근 산 옷걸이는 개당 160원에 불과했다. 이씨는 쿠팡보다 저렴하고 비슷한 가격대인 다이소보다 상품 종류가 많은 알리를 앞으로도 애용할 생각이다.
중국계 이커머스 알리, 테무 등이 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자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쿠팡, 네이버 등 국내 이커머스를 넘어 생활용품, 의류 등 일상에서 쓰는 소비재 시장 자체가 '메이드 인 차이나'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중견기업정책관(국장급) 주재로 이커머스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쿠팡, 네이버는 물론 11번가, 지마켓, SSG닷컴 등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가 총집합했다.
업계는 이날 간담회가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을 두고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댄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사업체 정보가 불투명한 중국 이커머스 업체 현황, 국내 이커머스 업계 애로 사항 등을 논의했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한국 고객이 직접 구매(직구)하는 방식인 알리, 테무는 각각 2018년 11월, 지난해 7월 국내 시장에 상륙했다. 알리는 진출 초기만 해도 긴 배송 기간 등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두 회사가 중국 전역에 물류망을 넓혀 한국으로 오는 배송 기간을 단축하자 값싼 제품 가격이 소비자 심리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집계 결과 1월 알리 앱 이용자는 717만 명으로 지난해 1월 336만 명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테무 앱 이용자 역시 진출 직후인 지난해 8월 52만 명에서 지난달 571만 명으로 열 배 넘게 불었다. 지난달 이커머스 업계 2위인 11번가 앱 사용자(759만 명)를 위협하는 성장세다.
중국 이커머스가 더욱 무서운 면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이다. 알리는 지난해 11월 LG생활건강 등 국내 파워 브랜드를 유치하고 배송 기간을 사흘로 뒀다. 주요 이익 수단인 입점 수수료는 3월까지 받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국내 물류 창고를 만들어 더욱 빠르게 제품을 전달할 계획이다.
중국 이커머스가 쿠팡 등 국내 이커머스에 위협이나 꼭 부정적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이커머스를 통해 물품을 판매하는 제조사 입장에선 판로가 넓어진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알리, 테무의 등장으로 쿠팡 중심이던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제조사로선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리, 테무가 계속 진격하면 국내 이커머스는 물론 중소기업 생태계까지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알리, 테무의 상위 판매 품목인 중국산 저가 생활용품, 의류 등이 국내에서 많이 팔릴수록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관련 기업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진출설이 제기되는 알리의 도매 플랫폼 '1688닷컴'이 실제 문을 열면 소매시장에 이어 도매시장까지 중국 이커머스 영향권에 들어간다.
업계에선 앞으로 중국 이커머스의 추가 성장을 좌우할 요소로 신뢰도를 꼽는다. 중국 이커머스 고질병인 짝퉁 제품 판매를 해소하지 못한 채 초저가 정책만으론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데 한계에 이를 것이란 뜻이다. 국내 이커머스와 비교해 반품, 환불 등 고객 응대 서비스에 뒤처지는 점도 중국 이커머스가 서둘러 채워야 할 부분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알리, 테무 등을 통해 수입하는 대부분 직구 제품은 안전인증(KC) 의무가 없다"며 "미인증 저가 제품·가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