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언어혁명' 꿈꿨던 김수경의 사랑과 좌절

입력
2024.02.17 12:00
10면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번역 출간
한자 폐지와 한글 풀어쓰기를 지향했던
월북한 천재 언어학자 김수경 생애 복원
한글민족주의의 원형 확인해볼 수 있어

월북한 언어학자 김수경(1918~2000). 그가 남한을 택했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이름을 'ㄱㅣㅁ ㅅㅜㄱㅕㅇ'이라 쓰고 있을까. 한글은 모아쓰기가 원칙이지만, 한글의 독창성이나 과학성을 강조하는 이들 중에는 여전히 영어의 알파벳처럼 풀어쓰기-kim sookyung처럼-를 했어야 했다는 이들이 있다. 표기법을 바꾸는 순간 들게 될 엄청난 비용과 혼란을 감안할 때 이제 와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당대 최고의 언어천재 김수경의 복원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바로 그 사람, 그러니까 '한자 없는 풀어쓰기 시대'를 예비했던 김수경의 일생을 다룬 첫 평전이다. 저자는 이타가키 류타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 캐나다에서 우연히 김수경의 딸을 만났던 인연이 이 책으로 이어졌다. 김수경과 아내 이남재 등 가족과의 개인적 삶, 그리고 언어학적 연구 내용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8년간 써내려 갔다.


김수경은 천재였다. 경성제대 철학과를 거쳐 도쿄제대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10여 개 언어를 다룰 줄 알았다. 당시 일본 최고의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패전 뒤에도 김수경을 그리워했다. 김수경의 제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여러 권의 원전을 한자리에 펴두고선 그 자리에서 직독직해하며 강의하던 스승의 모습을 기억한다. 이런 재능 때문에 일찌감치 김일성대학 교수가, 곧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에서 황장엽(1923~2010)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간부가 됐다.

일제하 언어혁명을 꿈꾸었던 민족주의자

암클, 언문 등으로 천대받던 한글이 부상한 건 일제 식민시기다. 우리 민족만의 그 무엇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 오르면서 민족, 혼, 얼 같은 개념은 한글과 붙어 다녔다. 광복 이후엔 더 강력한 관념이 됐다.


그 뿌리엔 주시경(1876~1914)이 있었다. 주시경의 남한 제자가 최현배(1894~1970), 북한 제자가 김두봉(1889~1960)이다. 이들 모두 풀어쓰기, 한글 전용론 등을 주장했다. 최현배의 주장은 남쪽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차차 깎여나갔으나, 북한에선 상황이 좀 달랐다. 김두봉은 북조선노동당 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맡은 핵심 인물이었다. 그의 정치적 뒷받침에다 천재 김수경이 있었으니, 북한에선 한글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선 혁명에 몸 던진 한 언어학자의 조용한 흥분

김수경 등이 작업해 1948년 내놓은 '조선어 신철자법'은 바로 그 내용이다. 한자어는 차차 없어질 것이다, 중국어 표기를 위한 모아쓰기 대신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 풀어쓰기를 하려면 의미를 가진 단위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해야 한다, 이 형태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절음부 등을 만들어야 한다 등의 대원칙이 도출됐다. 두음법칙 폐지 등 북한식 표기법의 뿌리를 알 수 있다.


1949년에 쓴 글에서 김수경은 이렇게 밝혔다.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하여 우리들의 리성(이성)으로 도달한 그 정연한 론리적(논리적) 체계를 철자법의 전부면에 걸치어 일관하게 실시한다면 종래의 불합리한 점을 시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에 있어 우리들의 언어와 문자를 진정으로 우수한 물건으로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문장을 두고 "상아탑을 벗어나 '어학적인 올바름'이 '정치적인 올바름'과 연결되어 조선의 혁명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장에 몸을 던진 한 언어학자의 조용한 흥분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써뒀다.

1960년대 침묵에 들어간 김수경

김수경의 꿈은 곧 무너졌다. 김두봉은 종파사건에 연루돼 1950년대 말 숙청됐다. 1967년 주체사상을 내세운 김일성은 서양 이론을 많이 참조하고 언어혁명을 주장한 김수경의 주장을 내친다. 김수경은 연구와 무관한 중앙도서관 사서로 좌천된 뒤 1980년대까지 기나긴 침묵에 들어간다.

혹자에겐 이 책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한글의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메모로도,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약간은 뻔한 다독임으로도 읽힐 수 있다. 비극적 이산가족사에 주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주적 민족국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언어학 연구를 어떻게 굴절시키는지, 그 관념에서 지금의 우리 또한 얼마나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지, 밉든 곱든 수백 년간 어떤 방식으로든 유통된 언어를 급격히 바꿀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여러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태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