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엄마, 저 졸업해요. 중학교 안 보내준다고 이 딸이 엄청나게 떼썼죠? 죄송해요. 하늘나라에서도 축하해주세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감겨 오는 눈에 힘을 주면서도 이들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빛나는 졸업장’. 평생 소원이자 한이었던 졸업장을 남들보다 60년 늦게 품에 안았지만, “그래서 더욱 벅차고 뿌듯하다”는 이들은 ‘늘푸름학교’ 2023학년도 졸업생이다.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늘푸름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28명의 ‘늦깎이’ 졸업생들은 두 시간 내내 울고 웃으며 졸업의 기쁨을 누렸다. 늘푸름학교는 배움의 시기를 놓친 어르신들이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도 3년간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초등·중등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성인 문해교육 프로그램이다. 영등포구에서 직접 운영하고 서울시와 구에서 연간 1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로 초등 8회, 중등 4회째 졸업식이 열린 이날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한참 동안 졸업장을 매만지다 졸업장에 적힌 글과 자신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배움의 소중함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졸업생들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줬고, 눈물을 보이는 이에게는 휴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늘푸름학교 학생들의 ‘친구이자 길잡이’ 교사들도 감격을 함께 나눴다. 교사들은 “선생님, 나 졸업장 받았어요”라고 자랑하는 졸업생들을 꼭 껴안아줬다. 이들이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 교사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교사 신영인(57)씨는 목이 멘 채“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수업을 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버텨준 학생분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감사한 나날들이었다고 지난 3년을 돌아봤다. 난치병인 루푸스병을 앓고 있는 이복순(75)씨는 ‘서울시 모범학생상’을 받았다. 이씨는 수시로 입원을 해야 하고 중증 근무력증 탓에 칠판 글씨가 두세 개로 보일 때도 있었지만 “아픈 것도 잊을 만큼 배우는 게 행복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어릴 때 중학교 시험에 합격했을 때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던 이씨는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배움의 꿈을 접은 뒤에는 정신없이 먹고살기 바빠 잊고 살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6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뭘 하고 살까’ 고민하던 끝에 늘푸름학교를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부 개근상을 받은 유민숙(77)씨도 “남들 다 있는 졸업장 나는 없는 게 평생 한이 돼서 늘푸름학교에 왔다”며 “어려운 거 하나씩 알아간다는 게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에서 진행된 ‘도전 골든벨’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유씨는 “공부한 걸 써먹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고 미소 지었다. 유씨는 늘푸름학교 중등 과정에도 지원했다.
늘푸름학교에서 ‘성실파’로 통한다는 김경수(75)씨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남의 집을 전전하며 머슴살이를 하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공장 일을 하던 젊은 시절, 손님들이 오면 영수증을 써줘야 했지만 숫자를 몰랐던 김씨는 “영수증을 못 쓰고 말로 하다 보니 일부러 금액을 속이는 손님들에게 돈도 많이 떼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매일 일기를 쓰고 있으니 선생님들께 고마울 따름”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올해부터는 늘푸름학교에 고등교육을 위한 검정고시반이 새로 생긴다는 희소식도 들려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구에 성인을 위한 고등학교가 없다 보니 고등학교 과정까지 배우려면 어르신들이 먼 길을 다녀야 한다”며 "올해부터 늘푸름학교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반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