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루니는 1949년 CBS에 방송작가로 입사,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피바디 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78년 여름 어느 날 CBS의 간판 시사 토크 프로그램 ’60 Minutes’의 마지막 코너인 짧은 토론 코너가 펑크가 나면서 급조된 게 '앤디 루니와의 몇 분'이었다. 그의 논평은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듬해부터 고정 코너로 자리 잡았다. 주제는 물가 등 생활 속 이슈에서부터 성가신 친척, 원치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스포츠나 문화 등 각 분야 화제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90년 초 그는 LA의 한 매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두의 지능이 대동소이하다고 믿지만, 흑인은 상대적으로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바람에 유전자가 희석돼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마약을 하고 임신을 한다.” 앞서 89년 12월 자기 코너에서 “한 해 동안 우리를 죽인 많은 질병은 사실 스스로 자초한 것들이었다. 과음 과식 마약 동성애 담배 등등." 그는 2월 8일 3개월 무급 정직을 당했다.
그는 인종차별 발언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직 조치를 수용하고 공식 사과했다. “자신의 글(말)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지 않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평생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 사람으로 알려지게 됐다. 참담함을 느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떠나 있던 3개월 동안 ’60 Minutes’ 시청률은 20%포인트가량 떨어졌다.
루니는 92년 '레드스킨스' 등 스포츠팀 이름에 반발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해 "어리석다"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그들 나라를 빼앗은 뒤 되돌려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합당한 범위 내에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지만, 그들이 나라를 되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또 한번 거센 항의와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