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 동기부여 상실 · 이토 준야 논란으로 무너졌나...일본 탈락 충격[여기는 도하]

입력
2024.02.04 06:20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일본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했다. 2015년 호주 대회 8강에서 짐을 싼 이후 9년 만이다. 일본의 탈락을 놓고 내부 기강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일본은 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의 대회 8강전에서 1-2로 역전패했다. 전반은 모리타 히데마사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후반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이란의 역전골을 허용하더니 후반 추가시간엔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까지 내줘 이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일본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지휘아래 대표팀 26명 중 20명을 해외파로 채워 5번째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를 비롯해 주장 엔도 와타루(리버풀)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 도미야스 다케히로(아스널) 이타쿠라 고(묀헨글라트라흐) 미나미노 다쿠미(AS모나코)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 등 해외파가 대표팀을 꾸렸다.


동기부여 문제없었나...해외파 딜레마

그러나 해외파를 대동한 일본은 대회 전부터 잡음이 일었다. 스페인 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 소속 구보 다케후사가 리그 중 아시안컵이 열리는 것에 불만을 제기해 도마에 올랐다. 구보는 아시안컵 개막을 1주 앞두고 열린 라리가 19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와 알라베스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후반 추가시간 부상을 입고 교체 아웃됐다. 왼쪽 허벅지에 고통을 호소했고 다리를 절뚝이며 그라운드를 나왔다.

아시안컵을 앞둔 상황에서 일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구보의 부상은 심각한 것이 아니었지만 정작 경기 후 구보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리그 중에 아시안컵이 열리는 게 나로서는 아쉽다"면서 "결국 나에게 돈을 주는 팀은 소시에다드다. 반면 이런 토너먼트는 소집되면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 팀에는 미안하지만 그곳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구보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스페인으로 넘어가 축구를 배우며 성장했다. 특히 둘은 마요르카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갑내기 친구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시즌 중 아시안컵에 차출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구보의 발언은 일본 축구팬들을 상심케 했다. 구보 입장에선 팀의 에이스로서 한창 활약해야 할 시기에 대표팀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듯하다. 팀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은 분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조별리그 D조 2차전 이라크와 경기에서 1-2로 패해 16강 조기 확정 기회를 날렸다. 동시에 조 2위로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후 "여러가지 반성을 해야 한다. 선수들은 이라크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며 "결과에만 좌우되지 않고 성과와 과제를 제대로 다져 다음 경기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16강에 진출해 바레인전을 앞두고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문제가 거론됐다. 지난달 30일 카타르 도하 메인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사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모리야스 감독은 '지난 월드컵과 달리 이번 아시안컵에선 대표팀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듯한데,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아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에 "아시안컵에서 우리가 고생한다는 건 존중의 의미로 보인다. 그만큼 우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다만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도 축구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현재 아시아 축구는 강팀과 약팀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부상 여파, 성범죄 혐의 등 바람 잘 날 없어

사실 해외파를 대거 소집한 일본 대표팀도 우려는 있었다. 미토마의 경우 아시안컵 소집 직전 소속팀 경기를 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목발까지 짚은 상황이었다. 구보와 도미야스 등도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아시안컵에서 제대로 뛸 수 있을지 걱정을 샀다. 일본 내에서도 '무리한 선수 차출'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더욱이 스코틀랜드 리그 셀틱의 주전 공격수 후루하시 교고를 매번 소집하지 않는 모리야스 감독의 고집도 한몫했다.

결국 미토마는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결장했다. 이란과의 8강전 후반 교체 투입돼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으나 끝내 득점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이토 준야(스타드 랭스) '성범죄 혐의' 논란이 터졌다. 이토는 일본의 주전 공격수로서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하는 등 모리야스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일본 현지 언론을 통해 이토가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축구협회(JFA)는 곧바로 이토를 대표팀에서 퇴출한다고 발표했다가 대표팀 내부 반발로 이를 번복, 결정을 보류했다. 그러나 일본 현지에선 이토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함께 JFA의 이 같은 결정에 논란은 확산됐다. 결국 JFA는 다음날 다시 이토를 대표팀에서 제외한다고 최종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모리야스 감독의 발언은 대표팀에 향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감독의 선수를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성범죄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토를 감싸면서 뭇매를 맞은 것. 모리야스 감독은 8강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능하면 이토와 우승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토는 아시아 무대에서 정말 훌륭한 선수다. 그가 뛸 수 없는 것은 아시아 축구 발전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이토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일본과 이란의 멋진 대결에 최고의 선수가 빠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미디어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이토를 과도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좋은 기량의 선수들을 보유했지만 내부 기강 등 많은 문제가 겹치면서 단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이 8강에서 탈락해 짐을 싸면서 아시아 축구팬들이 기대를 모았던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도 무산됐다. 양 팀은 해외파 완전체를 구성한 A대표팀으로 아직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도하 =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