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비의 철거 작업을 나흘 만에 완료했다. 군마현 지사는 일본 시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추도비를 산산조각 내 파괴하고서도 "(한국과의) 외교 문제로 발전하지 않았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 외교부가 강력히 항의하지 않은 것이 추도비 철거의 정당화 논리로 이용된 셈이다.
일본 지지통신과 민영방송 TBS에 따르면, 군마현은 지난달 29일 시작한 추도비 철거 대집행을 종료했다고 2일 오후 밝혔다. 군마현은 철거를 진행하는 동안 추도비가 설치된 다카사키시의 현립공원 '군마의 숲'을 전면 폐쇄했는데, 현장 정리를 마치는 대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1일 군마현이 추도비를 산산이 깨부수는 철거 현장 모습을 헬리콥터로 촬영해 보도했다.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도비를 이전조차 불가능하도록 부순 것은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물론, 독일 역사학자까지 "일본 시민사회가 반성과 화해를 위해 세운 추도비를 철거하는 건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고, 한일 우호 관계를 해치는 것"이라며 철거 중지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야마모토 이치타 일본 군마현 지사는 그러나 1일 기자회견에서 추도비 철거에 대해 "비 자체의 정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과거의 역사를 수정할 의도는 없다"고 강변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야마모토 지사는 "행정대집행은 전적으로 최고재판소(대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외교 문제로도 발전하지 않았다"고 정당화했다.
한국 외교부는 군마현의 강제 집행 결정이 알려진 뒤 "우호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결되길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을 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군마현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반면 2017년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한국 시민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자, 일본 정부는 이에 항의해 당시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하는 등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2004년 설치했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적혔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군마현 당국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한 것과 관련, "정치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어겼다"는 우익 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군마현 조치가 적법하다는 최고재판소 판단을 근거로 군마현은 시민단체에 추도비 철거를 요구했고, 시민단체가 이에 응하지 않자 지난달 29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를 강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