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랜서'라서, 제가 모니터링해야 할 글이 15분 이상 밀리면 메신저로 연락이 옵니다. 휴게시간도 연차도 없고, 주 6일 근무에 주말에는 8~10시간을 일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저에게 소중한 아이가 생겼지만 유산기가 있어도 일해야 했고, 실제 두 번의 유산을 했습니다."
9년 차 콘텐츠 모더레이터 정혜선(가명)씨는 유산한 당일에도 일했다. 콘텐츠 플랫폼을 살펴보며 유해하거나 불법적인 내용을 골라내는 게 그의 업무다. 어렵게 세 번째 아이가 생겼지만 출산휴가·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었고, 낳자마자 왼손으로 아이를 안고 오른손으로 일을 했다. 결국 출산 보름 후 고열·오한·통증으로 사흘간 시달리다가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는 의료진 설명에 정씨 입에서 불쑥 나온 말은 "저 일해야 하는데, 노트북 써도 되나요?"였다.
정씨를 포함해 각 분야의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10명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할말 잇 수다' 좌담회에 모였다. 총선을 70일 앞두고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실태를 증언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연차가 없어서 아파도 쉴 수 없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며, 3개월 초단기 재계약 구조 탓에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실태를 성토했다.
실제 일하는 방식은 여타 노동자처럼 특정 업체에 종속돼 직·간접적 업무 지시와 감독을 받지만, '근로계약서' 대신 '도급·위탁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씨 역시 조금만 업무가 밀리면 "자리에 계시냐"는 업체의 재촉을 수시로 받았지만, 외견상 '도급 업무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였기에 유급 연차·출산휴가 등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전혀 보장받을 수 없었다.
좌담회 1부 '근로기준법이 필요해'에 참석한 4년 차 콘텐츠 모더레이터 김지윤(가명)씨는 "3개월 단기간으로 반복되는 재계약 구조로 인해 불합리하고 부당한 업무 환경을 겪어도 재계약이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불만을 말하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영화 산업 노동자는 "근로계약 대신 용역·사업위탁계약을 쓰는 게 당연시되고 하루 18시간, 20시간 초장시간 노동도 개의치 않는 환경"이라며 "임금체불이 발생해서 고용노동부를 찾아가도 민사로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비판했다.
2부 '노동조합이 필요해'에서는 대리기사, 배달원, 방문 점검원,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노조를 만든 이들이 노동 실태와 단체교섭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LG전자 가전제품 방문 점검원들은 하루에도 고객의 집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차량이 업무에 필수지만, 그동안 유류비·보험금 지원은 전무했다. 이에 노조는 2022년 단협을 통해 월 1만4,000원 유류비 지원, 고객 부재 시 '헛걸음'한 데 대한 보상으로 월 1만5,000원을 지급받기로 합의했다. 실제 지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작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결국 플랫폼·특고 노조를 결성해 요구하고 있는 것들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같은 노동관계법을 단협을 통해 온전히 적용해달라는 것"이라며 "이들이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는 게 '공룡이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도 근기법상 근로자 기준에서 벗어난 취약 노동자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사회연대 3법' 중 하나로 '일하는 사람 권리 보장법'의 제정을 요구했고, 민주노총은 최근 'CJ 대한통운'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하청·간접·특고 노동자의 원청과의 교섭을 조직화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달부터 가동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플랫폼·특고' 관련 문제가 다뤄질지 주목된다. 플랫폼·특고 등 비임금 노동자는 2021년 기준 778만 명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