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치료비만 260만 원... '경제 절벽' 내몰린 희소병 환자 가족들

입력
2024.02.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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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인정에, 산정특례 판정까지
후천적이라고, 병 드물다고 손사래만
금전지원 절차 통과는 하늘의 별따기
"정부, 적극적으로 질환 인정해 줘야"

2018년 7월 27주 미숙아로 태어난 김해환(6)군은 세상에 나온 뒤 단 하루도 주사를 떼고 산 적이 없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괴사성 장염 판정을 받은 탓이었다. 괴사 부위를 떼어내는 장 절제 수술을 5번이나 하면서 소장은 10㎝만 남았고, 말 그대로 장이 짧아진 '단장(短腸)증후군' 환자가 됐다. 국내에 200명 정도밖에 없는 희귀난치질환이다. 몇 년을 24시간 내내 링거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다가 상태가 호전돼 요즘은 하루 10시간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 하지만 키와 몸무게가 또래에서 하위 1%일 정도로 성장은 더디다. 뇌병변까지 찾아와 발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달 25일 만난 어머니 허문영(41)씨는 대뜸 '남 일 같지 않은' 소식을 입에 올렸다. 지난달 초 충남 태안에서 소아당뇨를 앓은 딸과 부부 등 일가족 3명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부부는 평소 과도한 치료비 부담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씨는 "아픈 아이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흔히 '희소병'으로 불리는 소아 희귀난치질환은 종종 언론에 오르내린다. 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난치병에 걸린 자식을 살려내려는 부모의 헌신적 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만큼 대다수 가족 앞에 놓인 '경제 절벽'은 높기만 하다. '산정특례'라는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도 그렇다. 심사 문턱을 넘기도 어렵거니와 혜택을 받아도 감당해야 할 치료비는 산더미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도와야 하는 까닭이다.

같은 병도 태어난 뒤 아프면 지원 불가?

소아 희귀난치질환자 가족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질환 인정과 산정특례 승인이다. 희귀질환으로 확정돼야 산정특례 대상이 될 수 있고, 산정특례를 받아야 의료비 부담률을 10%로 경감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가족 생계의 명줄을 쥔 절차나 다름없다.

심사 과정은 꽤 까다롭다. 전문의료진이 질환의 유병률, 질환특성 등의 자료를 검토한 뒤 질환별 세부 분과 전문위원들이 세부기준에 따라 재차 심의한다. 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정부가 인정하는 희귀질환은 1,248개, 산정특례를 받는 이들은 2022년 기준 32만8,119명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은 노심초사하며 정부 승인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해환이네도 그랬다. 정부는 통상 '후천성 단장증후군'을 희귀질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괴사성 장염 수술을 해 후천적 질환으로 분류됐던 해환이는 원체 장의 길이가 짧게 태어났다고 보는 게 맞는다는 의사 소견이 나와 가까스로 인정받은 사례다. 허씨는 "해환이는 드문 케이스로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질환을 인정받지 못해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정특례를 받아도 금전적 부담은 산 넘어 산이다. 허씨 부부는 링거줄, 주사 바늘 등 부대비용 150만 원 등 이것저것 다 합쳐 아이 치료비로만 다달이 260만 원을 쓴다. 가족 생활비를 합치면 매달 500만 원 넘게 지출하기 일쑤다. 반면 소득은 아동수당 등 지원금을 포함해 365만 원에 불과하다. 허씨는 "그나마 산정특례조차 못 받았으면 '아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남편과 자주 한다"고 씁쓸해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지만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희귀난치질환은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전문의료진 등 검토 주체가 선천성 질환 결과를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 이상훈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단장증후군 환자 90% 정도는 출생 직후 생기는 외과적인 이유(후천성)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선천적이냐, 아니냐는 단순 잣대로만 적용 대상을 판별하면 수혜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환자가 너무 없으면 특례 지정도 안 돼요"

그래도 해환이는 다른 희귀난치질환 환자 가족 눈에는 행운아다. 아예 희귀질환 판정을 못 받거나 인정받더라도 산정특례에서 제외돼 한계 상황에 다다른 가정이 부지기수다. 태안 일가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주혁(33)씨의 아이는 가족삼출유리체망막병증(FEVR)이라는 선천성 망막질환으로 만 1세에 벌써 7번의 수술을 했지만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국이 밝힌 거부 사유는 '병의 중증도와 치료 본인부담금이 비교적 낮다'는 것. 대가는 컸다. 이씨는 쌓이는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해 재활치료 일부를 포기한 상태다. 그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아 수술비도 겨우 마련했다"며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아이 상태를 봐 가며 망막수술을 계속 해줘야 해 언제 또 큰돈이 들어갈지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희소한 병일수록 산정특례를 받기가 어려운 모순도 부모를 지치게 한다. 박모씨의 3세 아들은 전 세계에 환자가 50명 정도밖에 없다는 '스휘르스-호에이메이커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는 "다행히 올해 희귀질환으로 신규 지정됐지만, 산정특례를 받으려면 다시 장애가 심각하다는 점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가 너무 없어 전문가들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은 "다른 검사 결과가 산정특례 조건에 부합하더라도 장애 판정 등 별도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하는 환자가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 보호자들은 높은 문턱을 넘어도 다시 좁은문이 기다리는 희귀난치질환 복지 체계의 개선을 원하고 있다.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환우회 대표이기도 한 이씨는 "희귀질환이나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실제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창구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담 간호가 필요해 부모가 맞벌이하기 어려운 희귀난치질환 특성상 실상을 반영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허씨는 "단장증후군 같은 장 질환 환자도 장애 등록을 하게 해 활동보조서비스 등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희귀질환 지정 신청 관련 재심의 대기시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전문가 참여를 확대해 심의 전문성을 강화했다"며 "앞으로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귀질환 지정과 산정특례
희귀질환은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심사를 통해 인정된다. 국가관리 희귀질환은 희귀질환관리법령에 따라 매년 확대 공고하고 있다. '희귀질환 헬프라인' 누리집을 통해 신규 지정신청을 받고, 희귀질환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국내에선 2024년 현재 모두 1,248개가 희귀질환으로 공시됐다. 산정특례는 희귀질환자로 확진받은 사람이 등록절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경우 본인부담률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다. 산정특례 등록대상자는 건강보험가입자 중 담당의사로부터 해당 희귀질환 목록 및 진단 기준에 따라 검사를 시행해 확진받은 이들이 포함된다. 적용기간은 등록일로부터 5년이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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