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법관 대부분 로펌행... 법조계의 용서는 재판부 무죄보다 빨랐다 [양승태 무죄]

입력
2024.01.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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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의혹 연루 법관들의 현재]
14명 중 2명이 현직법관, 11명은 변호사
"재판배제" 김명수 약속 1년 만에 공수표


"형사재판을 받는 법관이 재판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사법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019년 3월 대법원)

2019년 3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법관들을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며 '국민 신뢰'를 우선할 것임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2월, 김 전 대법원장은 기소법관 8명 중 7명에게 재판부 복귀 발령을 내며 약속을 뒤집었다. 검찰이 법원에 '비위법관'으로 통보한 66명 중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도 10명에 불과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두 명의 대법관(고영한·박병대)은 기소 5년 만에야 전부 무죄 판결을 받으며 1심에서 혐의를 벗었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됐던 법관들은 이미 현직에 복귀해 재판 업무를 수행 중이거나 고액 수입이 보장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업무를 아무런 제한 없이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달 기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법관 14명 중 법원에 남은 사람은 2명이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청구서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았던 조의연 부장판사는 현재 대전지법에 있다. 전주지법 부장판사로 법원행정처 기조대로 행정소송 기일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방창현 부장판사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있다.

나머지 12명 중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제외한 11명은 모두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박병대 전 대법관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김앤장 소속이고,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2022년 5월 서초동에 자기 이름을 딴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2018년 8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고영한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법관들의 '변호사 전직'에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 사태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임 전 차장은 '부당 인사 개입'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2017년 3월 사의를 밝히고 같은 해 6월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일부 논란이 일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임 전 차장이 사법부 차원의 징계를 받은 적 없는 점 등을 감안해 등록을 허가했다.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 기소는 이듬해 11월에야 이뤄졌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도 기소 법관들의 변호사 환복은 줄을 이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전 위원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대법원에서 중징계를 받은 이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부적격' 의견을 냈지만, 변협 심사위원회는 등록을 허가했다. 이 전 위원은 현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변호사다.

결국 정치권이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해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카드까지 빼들었지만 헌법재판소가 "이미 퇴직한 사람은 파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허사가 됐다. 당시 탄핵 운동에 앞장섰던 참여연대는 "퇴임 법관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할 유일한 방법이 물거품이 됐다"고 꼬집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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