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찬반 논란이 큰 존엄사(회복 가망이 없는 환자의 연명 치료 중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기로 했다.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음에도 국회가 이를 법제화하지 않은 것(입법부작위)이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인지를 정식 심판 대상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28일 비영리단체 착한법연구회에 따르면 헌재는 16일 존엄사 허용을 주장하는 이명식씨와 그의 딸이 제기한 입법부작위 위헌 확인 등 헌법소원 청구를 정식심판하기로 결정했다. 헌재는 헌법소원이 청구된 사건에 대해, 지정재판부를 두고 각하(청구 자체가 부적법하거나 절차적으로 미비한 경우 실체적 심리 없이 심판을 종결하는 것) 또는 심판 회부를 결정한다. 정식 심판에 올라갔다는 것은 '헌재가 한번 다뤄 볼 만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이씨 측 법률대리인인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헌재가 존엄사 헌법소원이 들어오면 각하하던 것과는 다른 전향적 태도"라며 "공개변론 실시 등 앞으로의 진행 상황이 주목된다"고 밝혔다. 2017년과 2018년 잇달아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이 접수됐지만, 헌재는 구체적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각하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 목적은 국회가 존엄사 관련 법안을 마련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입법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한 것이다. 현행법에는 존엄사를 허용하는 근거가 없고, 존엄사를 돕거나 방치할 경우 오히려 살인 또는 자살방조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결국 존엄사를 원하는 당사자와 가족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데도, 국회가 관련 법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이씨 측 주장이다.
이씨는 척수염 환자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극심한 통증에 고통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9월 '존엄사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저를 비롯해 통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존엄사) 제도화가 꼭 필요하다"며 "인간의 존엄성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성뿐 아니라 죽음의 존엄성까지 포함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스위스로 가서 생을 정리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이 경우 스위스에 동행해야 하는 딸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헌법소원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호소해 보기로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