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자신이 이끌고 있는 기시다파 해체를 선언했다.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당 전체로 번진 후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찍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자민당 6개 파벌 중 4개 파벌이 해체를 선언하면서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지속돼 온 파벌이 존속 여부를 걱정할 정도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 파벌은 자민당 내 정책집단(연구모임)을 이르는데, 흔히 수장 이름을 따서 부른다. 일례로 아베파의 공식 명칭은 세이와정책연구회다.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 의원내각제 국가인 데다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특수한 환경에 기반해 발달했다. 유력 정치인에게 당 총재(총리) 선거 승리를 위한 핵심 수단이었고, 의원들에겐 자신이 속한 계파에서 총재를 배출해야 주요 당직이나 내각에 등용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 파벌 유지에는 돈 문제가 뒤따랐다. 정경유착 등의 뿌리로 보는 배경이지만 부정적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총재 선거에서 경쟁 파벌을 이기기 위해서는 제3의 파벌들과 합종연횡이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현 정권과 다른 정치 지향을 가진 파벌이 승리해 '유사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파벌이 '정당 내 정당' 역할을 한 것이다. 여러 파벌의 존재가 유권자의 다양한 욕구까지 충족시키면서 자민당 장기 집권의 원동력이 됐다.
□ 한국 정치에선 '계파'로 불린다. 민주화 이전부터 형성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친(親)'이란 글자가 붙어 열린우리당에 친노무현계(친노)가 있었고, 한나라당에는 친이명박계(친이)와 친박근혜계(친박)가 경쟁했다. 현재 국민의힘에선 친윤석열계(친윤)를, 더불어민주당에선 친이재명계(친명)를 계파로 부를 수 있는데, 경쟁 계파가 없어 '비(非)'를 붙여 비윤, 비명이라 뭉뚱그려 칭하고 있다. '견제 세력 없는' 계파 정치도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