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를 두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입니다."
일본 가게에(影繪·그림자 회화)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100)에게는 '동양의 디즈니'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그는 '선녀와 나무꾼' 같은 동화적 소재를 그림자 회화 특유의 공예 기법을 활용해 100세에 이른 현재까지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사카 파노라마'를 위해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방문한 그는 특히 전시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오사카 파노라마'는 이달 7일까지 열린다.
그림자 회화는 말 그대로 그림자로 표현하는 회화다. 회화를 완성하는 건 빛. 밑그림을 그려 종이를 오려내고 남은 여백에 셀로판지 같은 조명필름(트레싱지)을 붙인 뒤 조명이 종이를 통과하게 하면 '빛으로 그리는 그림자 그림'이 완성된다. 조수들은 커터칼을 쓰지만, 세이지는 80년 동안 면도칼을 사용해 작업하고 있다. "커터칼이 편리하긴 하지만 면도날을 사용하면 손에서 물아일체를 이루는 느낌입니다. 섬세하고 날카롭게 오려낸 선으로 표현되는 생명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는 80년이 넘은 후지시로의 업력이 모두 담겼다. 소년 시절부터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 대신 그림자 회화를 시작한 건 2차대전 이후 물자가 부족해 물감을 구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연유한다. 1948년 창간한 일본의 생활정보 잡지 '구라시노테초우(삶의 수첩)'에 실린 모노크롬(단색화)부터 일본 곳곳의 풍경을 6m 크기 화폭에 담은 초대형 작품까지, 200여 점의 원화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전시만을 위해 열흘에 걸쳐 새로 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열두 점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일본 교토의 금각사를 표현한 작품이 물이 흐르는 수조 안에서 영롱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광경이 일품이다. "(저의 기술이) 처음엔 미숙했지만 80년 동안 작업하면서 화려하게 바뀌는 지점을 즐겁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세이지의 동화적인 작품 세계를 읽는 열쇳말이다. 그가 언젠가 작가 노트에 "겐지 동화와 만나 처음으로 가게에 작가로서 눈을 떴다고 해도 좋다"고 말했을 정도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은 세이지의 그림자극으로 1,000회 이상 상연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도 포함된 '첼로 켜는 고슈' '구스코부도리 전기'의 작품 설명 아래에 동화 내용이 부연돼 있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세계가 모두 행복해지지 않는 동안은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세이지가 생각하는 겐지 동화의 핵심 메시지다. 올해 백세를 맞아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한국에서 전시를 여는 세이지가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려는 것도 모두의 행복을 위한 '사랑'과 '평화'다. 그의 첫 한국 전시는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한일 우정의 해'라 불린 2005년에 열렸다.
"이번 전시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 세기에 걸친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한국 관객들의 마음에 닿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