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에 요청했던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유예안이 25일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에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이 확대된다. 여야는 막판 협의를 벌였지만 산업안전보건청 격상을 놓고 충돌하며 서로 '네 탓' 공방에 치중했다. 여야는 2월 1일로 예정된 다음 본회의까지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그사이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또는 6개월 넘게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시행 2년 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이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후 정부·여당은 적용 대상 사업장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유예를 요구해 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지난해 9월 법 시행을 2년 더 늦추는 개정안을 냈는데,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에 진전이 없었다.
여야 논의는 지난달 구성된 여야 ‘민생법안 2+2 협의체’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시행 유예 조건으로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산업안전보건청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갑자기 꺼내 든 것’이라며 거부했다. 역으로 민주당에 ‘25인 또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만 법 시행을 1년 더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청 카드로 다시 맞섰다.
여야는 합의 불발의 책임을 떠넘겼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떡 하나 주면 또 다른 떡을 내어놓으라는 것"이라며 "조건을 붙이며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비정한 정치"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고용노동부가 이미 지난해 출범을 목표로 산업안전보건청 로드맵을 보고했다고 반박했다. 돌발 카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소상공인, 중소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균형을 맞추자는 민주당의 요구를 정부·여당이 끝까지 외면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근로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협상해 영세 사업자를 안심시키고 고용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본회의 도중에도 여야 원내대표가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여야는 내달 1일로 예고한 본회의까지 논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다만 법 시행 유예 자체에 반대하는 민주당 내부 기류가 강해 정부·여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수용하더라도 합의에 이를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결국 유예 법안 통과 이전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소상공인과 영세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장 혼란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빍혔다. 이정식 장관은 "정부가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50인 미만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조속히 구축하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고용부는 향후 3개월간 50인 미만 83만7,000개 사업장 전수 점검에 나선다.